[사설]‘총선 포퓰리즘’ 후유증에 시달리는 일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5일 03시 00분


지난해 8월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한 일본 민주당의 선거공약 중에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요소를 지닌 공약이 꽤 있다. 민주당은 기존의 아동수당과 별도로 중학생 이하 자녀를 둔 가정에 ‘고도모(어린이)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고교 수업료 무상화와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적자 농가에 대한 정부 지원도 공언했다. 자민당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 민심에 기대 정권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은 9월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을 출범시켰지만 포퓰리즘 공약은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재정적자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출범 초 70%를 넘었던 하토야마 정권의 지지율은 미숙한 경제 외교정책과 정치자금 의혹 등으로 최근 30%대 초반으로 급락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퓰리즘 정책이 일본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지자 민주당 정권은 최근 농가소득 적자보전 공약을 사실상 폐기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공약도 표류하고 있다. 어린이 수당과 고교수업료 무상화 법안은 중의원에서 통과됐지만 실효성과 타당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런 정책이 저출산 고령화와 내수부진을 타개해 경제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지만 회의적 시각도 만만찮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180%인 862조 엔을 넘었고 2012년에는 1000조 엔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무성은 올해 세수(稅收) 전망이 정부 일반회계 지출 92조 엔의 40%인 37조 엔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민주당의 공약을 모두 지킨다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재정악화를 한층 부채질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총선 때 소비세율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민주당은 재정 부담이 커지자 최근 소비세율 인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후유증을 생각하지 않고 선심공약 경쟁을 벌이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재정 사정은 일본 미국 유럽보다는 아직 상대적으로 건전한 편이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 빠르게 악화됐다.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재정지출 비율은 3.6%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러시아(4.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총선 포퓰리즘’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일본의 현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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