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한국의 짐승남, 일본의 초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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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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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스트레스깨나 받게 생겼다. 드라마 ‘결혼하지 못한 남자’에서 여자엔 관심 없는 ‘초식남’으로 등장했던 지진희가 최근 영화 ‘평행이론’에선 암벽등반까지 하는 ‘짐승남’으로 변신했다.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 나왔던 예쁘장한 장근석은 며칠 전 케이블TV 토크쇼에서 “낮엔 초식남, 밤엔 짐승남”이라고 선언해 ‘누나’들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짐승남은 초콜릿 복근이나 자랑하며 여자를 우습게 아는 마초가 아니다. 드라마 ‘추노’의 장혁, 오지호처럼 일편단심 순정까지 갖췄다. ‘짐승돌(짐승+아이돌)’ 그룹 2PM에 빠진 중년의 아내를 보며 정년을 코앞에 둔 남편들이 긴장하게 된 거다.

현실엔 그런 남자 없다고 그들은 비웃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자들은 생각한다. 일본 여성들이 용사마(배용준)나 이병헌에게 반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일본에선 암만 TV 채널을 돌려봐도 여자한테 열정적 사랑은커녕 달콤한 말 한마디 할 줄 아는 남자가 없다. 초식남은 보통이고, 패러사이트 싱글(기생충처럼 결혼도 안 하고 부모 집에서 사는 남자)이 는다고 일본은 고민이다. 늙은 부모에게 짐이 되는 건 물론, 출산율이 떨어져 국가 존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태가 됐다.

인구 감소 문제를 다룰 때마다 외국 언론들이 샘플로 꼽는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2008년 1.37명이다. 2005년 1.26명이던 시절부터 1억2777만 명의 인구는 이미 줄기 시작했다.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 현재 5명 중 1명인 노인 비중이 20년 후엔 열 명 중 셋이 될 걸로 추정된다. 세금 내는 노동인구는 줄고 부양인구만 많아지니 일본이 쇠락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은 분위기다. 여기에 도요타자동차 리콜 사태까지 터지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구조개혁은 물론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해야 일본 경제가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韓日모두 저출산이냐

출산율 추락 이유를 일본 정부는 미혼과 만혼이 늘기 때문이라고 본다. 특히 남자들이 심각하다. 20대 후반에선 10명 중 7명, 30대 초반에선 둘 중 하나가 결혼을 안 하거나 못했다. 종신고용 시대엔 직장상사들이 중매를 서줘 남자들이 결혼할 수 있었지만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 이후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직장중매가 사라졌다. 마마보이를 거쳐 초식남이 된 일본 남자들이 여자를 사귈 기회를 잃은 셈이다.

결혼 자체가 이렇게 어려워지자 요즘 일본에서 잘 팔리는 책이 ‘혼활(婚活)시대’다. 저자 시라카와 도코 씨는 “성희롱 방지 교육이 너무 잘된 탓인지 여자한테 먼저 전화하는 남자가 없다”며 “한국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실은 나무) 없다는 말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부러운 듯 말했다.

문제는 저출산이 한국에서 더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2008년 합계 출산율 1.19명으로 일본보다 훨씬 낮다. 노인 인구 비중도 지금은 일본의 절반이지만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2050년엔 38.2%로 일본(36.8%)을 추월할 걸로 예상된다. 일본이 출산율 저하의 이유로 꼽는 남자들의 미혼율 또한 두 나라가 비슷하다. 20대 후반에선 10명 중 8명, 30대 초반에선 10명 중 4명이다. 일본은 초식남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지만, 우리나라에선 짐승남이 각광을 받는데도 결과는 똑같이 ‘저출산’이 돼버린 희한한 형국이다.

대책 역시 두 나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보육시설을 늘리고 가족친화적 직장을 만드는 건 기본이다. 일본은 중학생까지 자녀 한 명당 한 달 1만3000엔의 양육비를 주기로 했고 우리나라는 저소득층 보육료 지원을 확대하는 게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단 결혼을 한 뒤의 얘기지,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한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사교육비 대책도 나중 문제다. ‘격차사회’ ‘패러사이트 싱글’ 등의 책을 쓴 주오대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도 “비혼(非婚)이 문제인데 양육비나 보육시설 늘린다고 해결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시, 결론은 경제성장이다

서양처럼 혼인 외 자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태세가 안 됐다면, 진정한 저출산 대책은 경제성장밖에 없다. 그래야 일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20세기 유물인 정규직 중심의 종신고용 시대는 다시 올 수 없다는 글로벌 현실을 직시하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줄여 청년 고용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쨌든 직장이 있어야 배우자도 열심히 찾는다는 도쿄대 조사결과가 1월에 나와 있다. 2005년 1.26명이던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지금만큼 늘어난 것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개혁에 경제가 반짝한 효과로 평가된다.

짐승남이 있는 우리나라는 그래도 일본보다 희망적이다. 여성 파워가 커지는 건 좋지만 이젠 적당히 봐주는 전략도 필요할 것 같다. 괜히 초식남 만들어 여자들만 힘들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도쿄에서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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