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요타보다 위험한 한국식 ‘하청업체 쥐어짜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8일 03시 00분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의 브레이크 설계 문제점을 인정하고 리콜(제품 회수 및 무상수리)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미 캠리 등 10여 개 차종에서 약 1000만 대의 리콜을 발표한 도요타의 위기감은 한층 커졌다. 일본의 ‘안전 신화(神話)’와 ’품질 신화’도 휘청거리고 있다.

도요타는 2007년 미국 GM을 제치고 세계 자동차업계 1위로 뛰어올랐지만 이에 걸맞은 품질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성공의 덫’에 빠지면서 생긴 오만과 지나친 원가절감의 폐해가 도요타를 덮쳤다. 도요타는 지난달 국내외 부품업체에 2013년까지 납품가격을 30% 이상 낮출 것을 요구해 경영상의 부담을 고스란히 하청업체에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청업체 쥐어짜기’에 관한 한 한국의 대기업도 자유롭지 않다. 원가절감 필요가 있으면 우선 협력업체에 전가하는 관행이 자동차업계를 비롯해 산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노조의 입김이 강한 일부 기업의 폐해는 더 심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경영진이 노조에 고용안정과 높은 임금을 제공하는 대신 노조는 비정규직 활용과 하청업체에 부담전가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자동차업계에서 노사담합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이기주의’가 덜한 도요타가 저 지경에 빠졌다면 우리 기업들의 잠재적 위험성은 훨씬 크다.

한국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08년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4년 전보다 5.3% 줄어든 반면, 국내 5개 자동차업체에 납품하는 우량 협력업체 17개사의 평균 영업이익은 22.4%나 감소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가 지속되면 도요타사태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걱정했다. 1차 협력업체의 2, 3차 협력업체 쥐어짜기도 심하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1차 협력업체들이 대기업 계열 원청업체로부터 받는 납품가를 중간에서 심하게 후려치는 일이 잦다”고 했다.

대기업이 ‘갑을(甲乙)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점을 악용해 경영 부담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면 하청업체의 경영이 어려워진다. 이는 품질불량과 대기업 및 국가 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진정한 상생(相生)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청업체발(發) 위기’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 대기업 경영진과 노조는 ‘도요타의 추락’을 강 건너 불 보듯이 하지 말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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