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포퓰리스트로 불린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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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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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그의 취임식은 대단했다. 현장을 취재했던 워싱턴 특파원은 새벽부터 지하철에서 취임식장으로 끝없이 쏟아져 나온 인파에 놀랐다고 한다. 의사당과 백악관 부근의 내셔널 몰에는 버락 오바마 신임 대통령의 말을 듣기 위해 200만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첫 흑인 대통령인 데다 금융위기로 ‘미국의 몰락’이 가시화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인들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존 F 케네디와 같은 꿈을 가진 지도자로 비쳤다. ‘담대한 희망’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등 그의 책 제목처럼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갖게 한 때였다.

그로부터 1년, 오바마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꿈과 현실은 달랐다. 언론의 종합 평가는 ‘그럭저럭 잘했지만 위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여론조사 수치는 더 가혹하다. 재임 1년간 평균 지지율은 57%로, 1960년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하위 그룹이다. 또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사이의 지지율 격차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이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통합된 미국을 만들겠다고 했건만 이념적 양극화가 어느 때보다 심화됐다는 뜻이다.

1년을 돌이켜보면 그는 국제적으로 독불장군 미국의 이미지를 희석시켰고, 아프간에서 미군의 증파를 약속해 관련국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빈곤층을 위해 건보개혁을 밀어붙였으나 중산층이 등을 돌리고, 구제금융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으나 실업자가 줄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매사추세츠 주 연방 상원의원 보궐선거는 분기점이었다. 중간평가 성격의 그 선거에서 진 충격은 컸다. 우리로 치면 민주당의 전라도라고 할 만한 곳에서 패배함으로써 예사롭지 않은 민심이반을 감지한 것이다.

이후 그가 구사하는 언어가 달라졌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싸우고 또 싸우겠다” “월가은행의 가당찮은 거액의 보너스” “고객을 기만하는 신용카드 회사들” “이익집단 로비스트의 뜻에 맞는 판결” 식으로 특정 집단을 거론하며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언론에서는 포퓰리스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계산된 그 말들에서 11월 중간선거를 고려한 현실 정치인의 냄새와 절박함이 묻어난다. 중간선거에서 지면 개혁은 물 건너간다.

오바마로서는 물줄기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국민의 불만을 터뜨릴 분출구로 월가를 겨냥했다. ‘나라를 망친 게 누군데 보너스라니…’라며 공분을 월가로 돌렸다. 나아가 “개혁을 위해 차라리 훌륭한 단임 대통령이 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러면서도 중간선거에 대비해 선거전의 달인이라는 측근 인사를 기용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여우의 교활한 지혜와 사자의 힘을 겸비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에도 맞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도자는 이상만으로는 현실을 이끌 수 없다. 소명의식만으로 어떤 정책이 그냥 성사되는 것도 아니다. 정책 성공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타협도 필요하고 거래도 필요하다. 정치란 가능한 현실적 수단을 동원해 자기편을 늘려가는 게 아닐까.

미국 조야는 오바마에게 민주당의 지도자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되라고 주문한다. 그는 27일 국정연설을 통해 다시 출사표를 냈다. 그가 실패한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을지, 브라질에 강국의 희망을 품게 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과 같은 길을 걸을지는 우리와도 무관치 않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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