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젊게 나이 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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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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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반갑지만은 않다.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마흔을 넘어서면 대개 그런가. 무심히 보내고 싶은, 심지어 잊고 싶기조차 한 날. 한 해도 안 거르고 휴대전화에 꼬박꼬박 도착하는 기계적 메시지까지 나이를 일깨운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지점.’ ‘소중한 생일날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카드.’

익숙한 것에만 안주하지 않기

해가 바뀌면 어김없이 삼세번 나이를 의식하게 된다. 연말연시에 한 번, 설에 한 번, 생일에 또 한 번. 올해는 10년 치를 한 묶음으로 만든 달력을 받고 더 심란했다. 지금 나이에 열 살을 더 보태면 대체 몇 살인가. 함부로 흘려버린 세월의 무게에 전율이 인다.

‘참 우습다/내가 57세라니/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최승자의 ‘참 우습다’)

맞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며 주름살은 늘어도 마음은 예전 그대로인데 삶의 후반전으로 곤두박질하는 느낌을 받으면 어이없고 답답하다. “몸도 내 몸이 아니고 마음도 내 마음이 아니다. 단지 몸일 뿐, 단지 마음일 뿐”이라고 불가에서는 말한다. 살아있는 성자로 불린 피에르 신부는 시간의 모래성 앞에서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좀 더 쉽게 말했다. 그렇다면 ‘성년의 오후’와 ‘아름다운 황혼’을 제대로 맞이하려는 준비가 일찌감치 필요할 법도 하다.

최근 뉴욕타임스 기사는 도움이 될 지침을 전하고 있다. 분명 책을 읽었는데 내용은 가물가물, 멀티태스킹은커녕 가스레인지에 냄비 올려놓고 전화가 울리면 냄비 생각은 까맣게 잊는 증세가 시작되면 불안하다. 하지만 기사에 따르면 노화로 인해 뇌세포의 40%를 잃는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중년 이후에도 뇌는 꾸준히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발전할 수 있다. 나이 먹을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머릿속에 축적한 것이 사라져버린 게 아니라 신경계의 꼬불꼬불한 주름 어딘가에 잠자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든 뇌에 활력을 주는 방법으로 제시된 항목들이 신선하다. 나이 들수록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십상인데 그 틀을 깨라는 것이다.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나 책도 접해 보고, 젊은 시절 이후 고수해온 가치관에도 때로 의구심을 가져보라는 조언이다. 외국어를 배우거나 출근 노선에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다. 나이든 뇌를 흔들어 깨우고 싶다면 익숙한 것, 편안함을 느끼는 안전지대에서 안주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의미다.

이전처럼 빨리 배울 수 없어도 나이 들면서 이른바 ‘큰 그림’을 파악하는 능력은 더 커진다고 한다. 나이가 선사하는 여유와 자유를 즐기고 싶다면 나와 다르게 세상을 보는 관점에 인색하게 굴 필요는 없지 싶다. 뇌의 노화를 재촉하는 게 희망이라면 할 수 없지만.

정신적 노화의 길 가는 한국사회

어디 개인만 그럴까.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편먹고 상대편을 향해 삿대질하고 분개하는 한국사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행하는 속도만큼이나 정신적 ‘성숙’의 과정을 건너뛰어 ‘노화’의 지름길로 뜀박질하는 건 아닌지.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 변화는 필요 없다고 주저앉진 말자. 지금 선 자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나와 색깔이 다른 사람한테 과민반응을 자제하는 것. 이 모두가 젊게 나이 들기 위한 두뇌의 웨이트트레이닝이라고 달래보면 어떨까.

중년 이후도 배워야 할 것, 해야 할 게 많은 나이다. 투병하면서 11년 만에 새 시집을 펴낸 시인의 견고한 의지를 본받고 싶다면 더더욱 그렇다.

‘더더욱 못쓰겠다 하기 전에/더더욱 써보자/무엇을 위하여/아무래도 좋다’(최승자의 ‘더더욱 못쓰겠다 하기 전에’)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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