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종배]휠체어 못넘는 턱, 언제쯤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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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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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후 처음 와보는 대학로는 별천지였다. 몇 번 와 본 아내를 따라 여기저기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며 식당을 찾아 기웃거려 보았다. 식당은 많은데 이게 웬일인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없다. 입구에 턱이 있어서 무거운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몇십 군데 중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하다.

결국 우리가 밥을 먹은 곳은 조그마한 식당이었다. 들어갈 수 없었지만 메뉴가 맘에 들어 주인에게 식탁을 밖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해 먹었다. 마음씨 좋은 식당 주인을 만나 묵은지 김치찌개와 뚝배기 불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니 짜증을 달랠 수 있었다.

“대학로에 왔으니 연극이나 한 번 볼까?” 하며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극장은 5층 건물 지하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보니 지하행 버튼이 없었다. 우리는 티켓을 환불받고 건물을 나왔다. 대학로를 나오며 옛날에 한국에서 느꼈던 좌절감이 다시 밀려 올라왔다. 미국도 장애인 복지환경이 좋아진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1997년 미국 의학의 최고 기관인 의학원(Institute of medicine)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학적인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재활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물리적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장애를 의학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보는 소위 ‘사회적 모델’에서 장애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장애인 인권운동과 함께 미국을 장애인 천국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발효되어 장애인도 시민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게 됐다. 또 장애인복지법에 자립생활센터가 명시되어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장애인 인권을 신장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미국에서도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보조인 지원 연방법안’이 3년이 넘게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는 활동보조인 제도가 공론화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늦게 출발했어도 정보통신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실력을 갖춘 대한민국은 한번 마음먹고 시작하면 다른 나라보다 몇 배 빠르게 세계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장애복지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김종배 국립재활원 재활보조기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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