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 대법원장 재임 52개월, 사법부는 왜 변질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이용훈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취임 직전인 2005년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에 우리법연구회 같은 단체가 있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우리법연구회는 이전부터 단체의 폐쇄성, 회원들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최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폭력 무죄판결 등 국민 정서에 배치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해당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분위기가 있다. 최근 일련의 문제 판결을 내린 판사들 중에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닌 판사도 많다. 그러나 사태의 핵심에는 우리법연구회가 있다. 우리법연구회가 흐려놓은 사법부 분위기가 이런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법부가 젊은 판사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을 초래한 것은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 이 대법원장은 이런 상황이 처음부터 바라는 바였는지, 그들의 위세에 눌린 것인지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들을 이용하려 했는지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한다. 노무현 정권에서 박시환 우리법연구회 초대 회장이 대법관에 임명됐고, 우리법연구회 소속 강금실 변호사가 법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이 대법원장은 노 정권의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법연구회 전 회장인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이 대법원장 취임 직후 “우리법연구회는 대법원장을 지지하고 주류(主流)의 일원으로 편입된 이상 기존 주류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이 발언에 대해 “다수 회원이 대법원장의 철학을 지지하고 있어 이를 주류라고 표현했다”고 해명했다. 문 판사의 발언은 일선 판사들이 ‘철학이 다르다’며 법원장에게 ‘사법 독립’을 들이대는 내부 풍조를 연상시킨다.

촛불시위 사건 재판 때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현 대법관)은 관련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라는 e메일을 법관들에게 보냈다가 법관의 독립성 침해 논란에 휘말렸다. 신 대법관은 젊은 법관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대법원의 경고를 받았다. 과거에 중요한 사건은 경험 많은 부장판사나 재정합의부에 배당했으나 이 사태 이후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요구를 수용해 컴퓨터 추첨으로 사건배당을 하고 있다. 이번 PD수첩 판결도 중요한 사건을 젊은 단독판사에게 맡겼다가 소동이 빚어졌다. 얼마 전부터는 5년차 이하 법관에 대해 근무평가도 못하고 있다. 이 대법원장의 재임 52개월 동안 사법부는 법원장의 행정권이 무너지고 ‘튀는 판사’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쪽으로 변질돼 왔다.

이 대법원장은 앞장서 우리법연구회을 해체하고 법관 평가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