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원]JAL의 추락, 남 일 같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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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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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에서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신년모임에서 만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대기업 경영인에서 공기업 수장으로 옷을 바꿔 입은 지 오래되지 않은 그에게 근황을 묻자 자연스레 두 조직의 비교가 이어졌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사업부 자체가 통째로 날아가는 민간기업과 기댈 언덕이 있는 공조직은 효율성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중학생과 고3생 수업태도’ 비유까지 나왔다.

“(공기업에) 와 보니 외부에 신경을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일은 조직의 효율성을 되레 깎아 먹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다음 날 하필이면 일본의 대표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의 추락 소식이 들렸다.

일본 정부는 심각한 경영난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 JAL을 법정관리할 방침이며 주식은 휴지 조각과 다름없어졌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기자의 관심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일본 정부가 전자부품업체인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에게 추락하는 일본항공의 대표직을 맡아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는 점. 정부의 입김이 미치는 조직의 대수술에 필요한 칼을 기업 경영인에게 맡긴 셈이다.

일본 하늘을 나는 비행기 10대 중 7대 정도는 JAL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초대형 항공사가 왜 추락 위기에 몰렸을까. 관료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이 민간 경영인에게 SOS(긴급구조 요청)를 요청한 배경은 또 무엇인가.

JAL의 위기는 ‘반관반민 체질’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 기업은 국영 항공사로 출발해 1987년 민영화된 후에도 정치인과 관료가 경영에 자주 간섭한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나라가 뒤를 봐준다’는 사내 분위기가 있을 정도였다. 안일함이 오늘의 추락을 불러왔다는 얘기다.

예컨대 지방에 새 공항 건립계획이 나오면 관료와 그 지역 정치인들은 새 노선을 개설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익이 나지 않는 노선도 압력에 따라 무리하게 운항한 탓에 공항시설 이용료로 JAL은 매년 엄청난 돈을 내고 있다. ‘JAL 이사회는 국토교통성 8층’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국토교통성 8층에 있는 항공국이 이사회를 주무르는 것을 빗댄 말이다.

대형 여객기를 적정 수준 이상으로 보유하면서도 고객이 절반도 안 탄 채 운항하는 노선이 수두룩하다고 일본 언론은 꼬집었다.

눈을 국내로 돌려보자.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양양 울진 무안 김제 예천공항 등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때마침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금 잘나가는) 삼성도 까딱 잘못하면 구멍가게 수준 된다”고 일침을 놓은 것이 화제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발언(1993년)이 변혁을 강조했다면 이번 라스베이거스 발언은 절박(切迫)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의 ‘화두 던지기’는 이채롭다.

JAL의 추락이 남의 일 같지 않다. 한국에도 절박함과는 거리가 먼 ‘신의 직장’들이 아직 건재하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JAL의 추락을 강조하는 것은 이들이 올 한 해 한국 경제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과 다름없다.

김동원 국제부 차장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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