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내 집 앞 눈 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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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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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눈을 겨우 치웠는데 또 폭설이다. 마침 건너 동네의 남미 청년 카를로스가 친구 2명과 함께 찾아왔다. 눈을 말끔히 치워주고 45달러를 받아간 적이 있는 이들은 이후에도 눈만 내리면 아침 바람에 달려왔다. 폭설에 갇힌 서울을 보니 뉴욕 특파원 시절 눈 치우느라 고생하던 일이 기억난다. ‘이 집만 눈을 치우지 않았다’는 신고라도 들어갈까, 행인이 ‘쌓인 눈 때문에 넘어졌다’며 소송이라도 낼까 걱정도 했다.

▷기록적 폭설이 내린 4일 신속한 제설작업을 요구하는 주민 전화가 전국 시군구에 빗발쳤다. 대뜸 욕부터 퍼붓는 주민도 있었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골목길 눈까지 치우려면 그만큼의 행정력이 필요하다. 수십 년만의 폭설을 금세 치울 수 있는 제설장비를 지자체마다 사들이는 것은 세금 낭비다. 공무원을 투입하거나 서울 구청들이 운영하는 민간용역을 동원하려면 세금이 필요하다. 서울시가 4일 자체적으로 뿌린 염화칼슘과 소금만 11억5000만 원어치가 넘는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와 불편을 줄여야겠지만 그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2006년을 전후해 ‘건축물 관리자의 제설·제빙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일명 ‘내 집 앞 눈 쓸기 조례’다. 주택 빌딩 학교 등 건축물의 소유자, 점유자나 관리자는 건물 주변의 보도 이면도로와 보행자 전용도로의 눈을 치워야 한다. 내 집 앞 눈 치우기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의무다. 서울 성북구청이 펼친 캠페인처럼 ‘주요 도로는 행정력으로, 보도와 뒷길은 주민과 함께’ 눈을 치우는 게 맞다.

▷제설 제빙 의무를 규정한 자연재해대책법이나 ‘내 집 앞 눈 쓸기 조례’에는 과태료 등 처벌 규정이 없어 주민 참여가 전반적으로 저조하다. 하지만 서울 마포구 상암동 자원봉사대는 이번 폭설 때 언덕길 눈을 말끔히 치웠다. 강원도 주요 도로의 눈 치우기에는 육군 1군사령부 장병들이 참여했다. 충북 청주시 분평동 주민센터는 눈을 잘 치우는 업소에 ‘모범’ 현판을 달아주며 참여를 유도한다.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의 한 언덕길은 열선(熱線)을 깔아 눈을 녹였지만 모든 골목길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100년 만의 폭설엔 주민의 자발적인 눈 쓸기가 훨씬 효율적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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