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박형준]‘9회말 투아웃’을 사랑하는 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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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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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고향에 갔다가 낙상을 하여 크게 다쳤다. 서울에 와 집 부근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보니 생각보다 팔목이 심하게 부러져 있었다. 의사는 부러진 팔목에 철심을 박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팔의 부기가 빠진 며칠 후 수술을 했다. 그런데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내가 한 소리가 가관이다. “선생님, 이제 야구를 할 수 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프로야구 선수도 아닌 명색이 시인이란 자가 그런 소리를 하다니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원고지에 글씨를 써도 모자랄 손으로 야구를 하겠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다. 야구가 뭔지….

라디오 야구중계 들으며 꿈 키워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에 사내들이 눈밭에 모여 야구를 한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데 사내들은 하늘에서 눈송이를 헤아리는 건지 야구공을 쫓는 건지 뛰어다니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그중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를 손으로 잡으려고 애쓰는 어린아이처럼 중년의 사내 하나가 저 멀리 눈발 속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야구공을 잡기 위해 글러브를 높게 쳐들고 뒷걸음질치다가 눈밭에 넘어진다. 그 바람에 야구모자가 벗겨져 휑하게 드러난 정수리가 안쓰럽다. 그런데도 중년의 사내는 황급히 일어서서 야구공을 잡기 위해 자세를 다시 잡는다. 그 중년의 사내가 나다. 야구가 뭔지….

내 유년시절에 어머니는 섬으로 고춧가루 장사를 떠났다. 당시에는 섬에 고춧가루가 귀했다. 여름 한철 땡볕에 말린 고춧가루를 빻아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섬으로 보름이나 한 달 정도 장사를 떠났다가 오시곤 하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섬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중고 미제 라디오를 한 대 사왔다. 그때부터 나는 고등학교 야구중계에 빠져들었다.

당시는 텔레비전이 귀해 야구중계를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함성은 그야말로 시골 소년에게는 환상 자체가 되었다. 라디오를 틀 때마다 야구중계 캐스터가 높게 외치는 “아, 큽니다. 홈런이냐 파울이냐”라든지 “안타! 안타! 2루 주자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하는 말을 듣노라면 실제 야구장에서 나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설명한다고 느낄 정도로 손에 땀이 흠뻑 배어들었다.

어머니가 다시 섬으로 고춧가루 장사를 떠나면 나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동구 밖에 나가 미제 라디오를 틀어놓고 어머니를 기다렸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난한 시골 소년은 라디오를 틀어넣고 야구중계를 들으며 달래곤 하였다.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너무 일찍이 잃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정을 소리내어 읽는 듯이, 나 자신의 상상력을 증폭시키며 미래의 달콤한 꿈으로 인도하곤 하였다. 어둑어둑해져 내가 응원하던 고교야구팀이 결승에서 졌을 때 동구 밖에서 저녁 이슬에 젖어 집으로 돌아와 울곤 하던 유년시절, 야구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유일한 환상이었다.

그런 유년의 막연한 환상 속의 야구를 나 자신이 실제로 정식 운동장에서 하게 되었다. 그것도 40대 중반에 접어들어 멋진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거나 배트를 휘두르게 되었다. 처음엔 문인 몇이 모여 난지야구장의 귀퉁이에서 시작한 야구가 어느덧 휴일이면 생활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나는 지금 문인야구단 ‘구인회’의 선수다. 문인야구단 ‘구인회’는 2008년 10월에 창단되었다.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아동문학가 출판인 등 30여 명이 구성원이다. 야구를 사랑하고 장르를 초월한 글쓰기와 텍스트문화 전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야구팀이라는 넓은 영역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창단 이후 겨우 세 번밖에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연패를 거듭하는 팀이지만 ‘깨끗한 매너와 불타는 승부근성’이라는 팀컬러와 ‘즐겁지 않으면 야구가 아니다’라는 팀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현재 문단의 존경받는 소설가인 박범신 선생이 명예구단주이며 중견 은희경 소설가가 매니저를 맡고 있다. 가난한 문인이 야구를 한다고 KBO 유영구 총재께서 야구 장비 일체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40대중반, 문인야구단서 새로운 삶

야구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창조적인 감정이다. 야구는 매회 무(無)에서부터 창조되기 시작한다. 지고 있어도 그 무는 꽉 채워질 수 있다. 죽음에 비유될 수 있는 9회 투아웃에도 시간은 얼마든지 지속될 수 있기에 창조는 멈추지 않는다. 일상의 시간과는 다르다. 예술의 시간도 그렇다. 내게는 창조적인, 느낌의 야구가 문학이다.

평균 37.5세의 문인야구단의 실력은 낮지만 그래서 유쾌하다. 무엇보다 야구를 할 때마다 가난한 시골 소년이 미제 라디오로 야구중계를 들으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을 품었던 유년시절의 환상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 지금도 휴일이면 겨울바람의 강추위를 이기며 운동장으로 달려간다.

박형준 시인·명지전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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