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새해의 호연지기

  • Array
  • 입력 2010년 1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산의 기운 이춘환, 그림 제공 포털아트
산의 기운 이춘환, 그림 제공 포털아트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를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한 해를 창조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이른 새벽 배낭을 꾸려 길을 떠납니다. 반도의 등허리를 굽어볼 수 있는 곳, 해발 1400m의 만항재를 거쳐 함백산 정상에 서면 눈 덮인 백두대간을 굽어볼 수 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과 아득히 펼쳐진 준령을 내려다보노라면 태곳적 정기가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묵은 시간의 찌꺼기가 소멸되고 신생의 기운이 되살아나는 그 순간, 염두에 둔 것도 아닌데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말이 절로 떠올라 심신이 정화됩니다.

호연지기는 맹자의 가르침으로 인격이 지녀야 할 이상적 기운을 의미합니다. 아주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면 그 말이 절로 실감됩니다. 하지만 지상에서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드넓은 자연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한눈에 굽어보는 것보다 쳐다보아야 할 것이 많고, 보살피고 보듬기보다 경쟁하며 뛰어넘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남보다 뒤처지고 남에게 무시당하는 게 세속의 풍조이니 내남할 것 없이 목전의 일에 눈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 년에 한 번, 호연지기를 되찾기 위해 백두대간으로 가보세요. 태백산에 올라 설경과 주목을 감상하고 금대봉 골짜기로 들어가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를 둘러보노라면 세속에서의 낡고 남루한 기운이 절로 스러집니다. 한낮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시원의 정적 속을 걷는 동안 남과 경쟁하느라 잃어버린 자아, 남과 비교하느라 웅크렸던 마음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게 느껴집니다.

한 해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 해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전까지의 과거가 다른 의미를 얻기 때문입니다. 새해의 성공을 통해 비관적이고 절망스럽던 과거가 훌륭한 밑거름으로 승화되기도 하고 새해의 실패를 통해 이전까지의 성공이 오만과 독선의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란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우주적 공간, 다시 말해 우리의 창조적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인생의 경작지입니다.

새해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어지는 시간의 영토입니다. 동일한 넓이와 높이와 깊이로 주어지는 그 시간성으로부터 차별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재의 나는 내가 살아낸 시간성의 총화이니 나는 내가 경작한 시간의 결실입니다. 남을 원망하고 남과 비교하는 것보다 지금의 나를 최상의 조건으로 끌어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또 하나의 나, 위성시각을 통해 호연지기를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세상은 우주적 시간의 결실입니다. 백두대간도 한반도에 주어진 시간의 결실이요, 그곳을 마음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도 또한 시간의 결실입니다. 우리에게 다시 주어지는 무한 가능성의 새해, 호연지기를 잃지 말고 멋지게 경작해야겠습니다. 하루하루, 언제나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살면 수확의 계절에 마음 곳간이 풍요로운 결실로 넘쳐날 것입니다. 모두에게 풍년이 되는 한 해를 기원합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