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追捕令과 체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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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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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 중인 TV드라마 ‘선덕여왕’에 추포(追捕)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죄인을 쫓아가 붙잡는다는 뜻이다. 요즘의 체포에 해당한다. 신라시대엔 추포의 법 절차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진평왕보다 더 센 권력과 세력을 쥐고 있던 선대왕(先代王)의 후궁 미실은 정적(政敵)인 덕만공주(나중에 선덕여왕)를 제거하기 위해 훔친 옥새를 찍어 덕만 추포령을 내린다. 반면 김유신은 백제군을 정탐하러 갔다가 미실 세력의 모함으로 정식 추포령 없이 현장에서 대역죄로 검거된다.

▷덕만의 경우는 오늘날 판사가 발부하는 체포영장과 비슷하고, 김유신은 긴급체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불의(不義)한 체포에 대응하는 그들의 태도는 감동적이다. 피신했던 덕만은 미실 앞에 스스로 나타나 정면승부를 건다. 당황한 미실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옥에 갇힌 김유신은 “참수해야 한다”는 미실 측의 빗발치는 상소에도 오로지 백제군 방어 전략을 짜내는 데 골몰한다. 시청자들은 덕만과 김유신의 진실과 진심이 승리하는 과정을 만끽한다.

▷한명숙 전 총리의 검찰 출석을 둘러싼 검찰과 ‘노무현재단’ 측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이해찬 전 총리)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추포극처럼 긴박하다. 물론 하나는 픽션이고 하나는 현실이다. 하지만 한 전 총리의 자세는 덕만이나 김유신처럼 당당하지 못하다. 한 전 총리 측은 ‘정치 공작’이라며 정략적 대응으로 진실을 가리는 데 급급하다. 검찰은 두 차례의 자진 출석 거부에 이제 체포영장까지 받아 놓고 여전히 자진 출석을 바라고 있다. 공은 한 전 총리에게 넘어가 있다.

▷5만 달러 수수 혐의 자체보다 전직 총리로서의 위신과 품격 문제가 더 큰 관심사다. 정말 공작정치의 결과라고 믿는다면 검찰 조사를 받으며 확증을 잡아내 폭로해도 늦지 않다. “단돈 1원도 받은 일 없다”면서 아예 검찰에 안 나가겠다는 자세는 설득력이 없다. 많은 전현직 정치인, 고위 공직자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법정에 섰다. “체포영장을 즉시 집행하라”는 것도 떼쓰기로 비친다. 탄압 받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태(舊態)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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