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성용]왜 외환銀인수에만 매달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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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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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매각 작업 재개 일정이 발표되면서 외환은행 인수가 다시 금융업계의 화두가 됐다.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주체는 업계 1위 지위를 단숨에 구축하고 금융산업의 위상을 한층 높이고자 할 것이다. 외환은행의 인수가격은 몇 가지 이유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첫째는 게임 이론이다. 경쟁사에 기회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프리미엄을 지불하고서라도 반드시 인수하려는 심리를 일컫는다. 인수전에서 실패하는 일이 과도한 인수가격 지불에서 오는 고통보다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유일한 승자는 론스타 사모펀드

둘째는 외환은행에 맞먹는 규모의 다른 매물이 없다는 점이다. 대형 은행을 인수할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수자는 매물로 나온 상품의 가치보다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상품을 차지해야 한다는 점에 주력한다.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승리하는 기업은 축하 받아 마땅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환은행을 손에 넣기 위한 국내 기업 간 각축전에서의 유일한 승자는 론스타 사모펀드라고 생각한다.

11년 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은행산업은 은행 통폐합 및 부실자산 정리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그리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이를 완성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은행의 인프라나 시스템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임직원은 여전히 똑같다. 경영진 구성도 그대로고 참신한 사고나 과감한 조치는 찾아볼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국내 은행이라는, 좀 더 덩치가 커진 부대를 열어보면 여전히 과거의 경영 스타일이라는 오래된 술 냄새가 핑 돈다.

한국 금융산업은 글로벌화가 가장 덜 된 산업 중 하나이다. 금융산업 전체로 봤을 때 해외 매출 비중이 5%가 채 안 되고 지난 수십 년간 이 수치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국내 기업고객을 위해 해외에 지점 몇 개를 연 것 외에는 이렇다할 만한 해외 인수합병도 없었다. 글로벌 금융 허브라는 구호를 정부가 지난 수년간 수없이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수출이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계 12대 경제 대국으로서 부끄러운 현주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금처럼 리스크 회피적인 자세를 견지할 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몇 주 전 미국 출장 기간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값싼 매물로 나온 미국 은행이 많아 깜짝 놀랐다. 이들은 모두 외국인 투자자를 기다렸는데 이런 기회는 오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외환은행 인수가격 정도면 훨씬 저렴하고 규모도 크고 성장잠재력도 큰 해외 은행을 인수할 절호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여전히 뒤처진 한국금융산업

하지만 자신감과 경영 역량 부족으로 한국의 은행은 미래 성장을 위한 토대를 닦기보다는 쉬운 해결책을 찾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국내 시장에서는 입지가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무대에서는 여전히 국내 사업에 주력하는 소형 업체일 뿐이다. 다시 말해 덩치가 조금 커진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국내 기업에 기업가정신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많이 하는데 은행 경영진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지난 10년간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 뛰어들어 글로벌 업체로 도약한 한국 기업 중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지 되묻고 싶다. 태도와 열정이 차이를 만든다. 국내 은행 경영진에서는 이런 열정을 아직 찾아보기가 어렵다. 언제쯤 준비를 마칠 것인가.

이성용 베인&컴퍼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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