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성재호]통신비밀보호법, 감청절차 투명하게 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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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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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있어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필요성과 비례성의 조화 문제를 들 수 있다. 국가가 외부로부터 급박한 위해를 당하는 경우 자국을 지키기 위한 방어조치는 당연하지만 그 조치는 과하지 않아야 한다. 법에서 필요성과 비례성의 조화는 매우 간단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매우 다양한 요소와 여건을 두루 고려해야 하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논란이 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논의도 이 두 가지 요소 간 최적의 방정식을 찾아야 한다. 통신비밀의 보호라는 대전제하에 범죄수사 및 국가안전의 필요성과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해치지 않는 비례성을 도출해야 한다. 최근 논의를 보면 여러 집단이 자신의 관점에서 한쪽 면만을 확대해 주장하거나 상대를 의혹의 시각으로만 보는 듯해서 안타깝다.

상황과 여건이 바뀌면 어떤 사안을 다루는 법규를 개정할 필요성에 누구나 공감한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논의는 필요성 면에서 대부분이 수긍할 수 있는 사안이다. 사회에서 활용되는 통신수단은 융합기술의 발전으로 크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선전화 가입자는 2100만 명에 불과한 반면에 휴대전화 가입자는 4600만 명을 넘어섰고 인터넷전화를 비롯한 유사 전화서비스 가입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 통신수단은 다양한 범죄의 매개로 악용되어 국가 안위의 중대한 위협요소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통신환경의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의 필요성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다만 법 개정의 필요성에 병행하여 개정의 범위나 방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도 일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변화가 새로운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수사정보기관에 의한 통신감청의 문제점은 비례성의 측면에서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까닭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을 둘러싼 견해차는 정부와 시민, 사업자와 이용자가 각각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본태적인 문제다. 법 개정을 둘러싼 양론이 수렴되지 않고 찬반 논리가 평행선을 달리며 더욱 강하게 부딪치는 형국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문제이다. 개정을 주장하는 논리와 반대하는 논리는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고 다른 쪽이 전적으로 그르다고 재단할 수 있지 않다. 필요성에 나름의 근거가 있고, 설득력이 있다면 제기된 주장의 필요성을 수용해야 한다. 문제점의 지적이 비례성의 원칙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법 개정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개정안을 보면 통신회사 협조를 통해서만 감청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수사정보기관의 감청 남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절차적 투명성에 주안점을 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수사정보기관의 행태에서 비롯된 우려가 남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절차적 투명성 확보에 대한 시민의 우려를 불식할 보완책이 필요하다. 수사정보기관이 절차를 위반하고 감청자료를 요구하거나, 통신회사가 통신자료를 임의로 사용하는 행위를 엄격히 규제하는 방안이 하나의 예가 된다.

필요성을 위해 비례성을 외면하거나, 비례성을 이유로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 중 어느 쪽도 합리적이지 않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둘러싼 와류가 더 큰 파고를 만들지 않도록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각자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조화롭게 어울려 와류가 아닌 순리적인 파도를 만들어야 하고, 그 파도로 사회 속의 용존산소가 많아져서 더 멋지고 품격 있는 대한민국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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