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복수노조와 전임자 급여금지, 유예비용과 시행비용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내년부터 복수노조를 전면 허용하고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공기업과 대기업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임 장관은 26일 제주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복수노조 설립은 기본권이므로 더는 유예할 수 없다”며 최근의 노사 상생 분위기에선 복수노조가 허용돼도 강경투쟁을 하는 노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7년 노동조합법은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를 명시하고 세 차례 시행을 연기해가며 노사가 전임자 수 감축에 노력하라는 의무를 부과했다. 그런데도 개별 노조 평균 전임자 수는 2002년 2.2명에서 2008년 3.6명으로 늘어난 것이 현실이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임 장관의 낙관대로 노사 상생 분위기가 이어질지, 민주노총 같은 강경 상급단체가 여러 기업에 새로운 강경 노조를 똬리 틀게 해 1987년 이후 20여 년 만의 ‘노조 질풍노도 시대’가 재연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동일 사업장에 생겨난 여러 노조가 초기에는 선명성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은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겨우 넘기고 있는 우리 경제가 이런 노사 불안 상황에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조종사 정비직 등 직종별로 8개의 노조를 둔 일본항공(JAL)의 경우 2006년 경영위기 타개를 위한 임금삭감안이 1만 명 이상 가입한 최대 노조의 동의를 받았지만 나머지 노조들이 반발해 지금까지 고비용 구조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경영 위기에 빠져 있다.

노조법은 또 노동부 장관이 2009년 12월 31일까지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 시행 유예 13년째인 지금까지 단일화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정권타도 운동을 벌이는 정치꾼 귀족노조들의 개입을 걱정하면서도 일단 복수노조를 허용한 뒤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것은 안이한 면이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임 장관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옳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원칙은커녕 불법 폭력을 일삼는 강성 노조가 버젓이 활개를 치는 상황에서는 ‘복수노조는 기본권’이라는 원칙과 현실 경제 사이에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굳이 원칙을 따지자면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야말로 유예 없이 전면 시행돼야 한다.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가 제시하겠다는 창구 단일화 안으로 복수노조 시대의 노사관계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노조활동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려면 법과 제도뿐 아니라 전반적 인식도 변해야 한다. 정부는 스미스소니언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를 시행하는 데 따르는 국가적 코스트(비용)가 계속 유예하는 데 따르는 코스트보다 적도록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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