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정이현]‘원래 다 그런 세상’서 사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며칠 전 저녁 지하철을 탔다. 내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은 누군가와 한창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 위에 작지 않은 크기의 숄더백과 누런 서류봉투를 단정하게 올려놓은 걸로 보아 직장 여성인 듯했다. ‘이른 퇴근길인가 보다’라고 짐작했는데 별안간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엔 정말 매사에 의욕이 하나도 없다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원래 서른 살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나이잖아!”

나도 모르게 그녀의 표정을 힐끔 훔쳐봤다. 그 여성은 진심으로 괴로워 죽겠다는 얼굴로, 한숨까지 폭 내쉬었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오래도록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원래 그렇잖아!’ 그리고 몹시도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가 서른 살이 ‘원래 그런 나이’라고 그녀에게 알려주었을까? 원래 그렇다는 건 도무지 무슨 뜻일까?

스물아홉 살의 12월 즈음 선배언니들을 만나러 갔던 일이 기억난다. 두 살 위인 선배에게 나는 꽤나 비장한 심경으로 질문을 던졌더랬다. “저도 곧 서른이에요. 스물아홉에서 서른 살로 넘어가는, 그 12월 31일 밤에는 당최 기분이 어떤가요?” 그때의 나는 예방주사를 먼저 맞은 아이에게 얼마나 아픈지를 조바심 내며 물어보는 유치원생과 비슷했을 것이다. 선배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서른을 넘긴 여자의 감회를 토해냈다. “이젠 순수한 마음으로 남자 만나기도 힘들어. 사랑만으론 부족해. 철모르던 이십대와는 다르지. 씁쓸하지만 원래 이 나이되면 다 그런 거야.” 그들도 역시 원래 그런 거야라는 용법을 사용하여 문장을 마무리 지었다.

위로와 냉소 속에 숨은 자기합리화

우리는 일상에서 원래 그렇다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한다. 슬픈 영화를 보며 촉촉이 젖은 눈가를 훔치는 남자를 향해 ‘남자는 원래 평생 세 번만 우는 거라던데?’라는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본 적은 없는가. 육아가 힘들다고, 가끔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자유가 그립다고 고백하는 아기 엄마에게 ‘엄마는 원래 자신을 한없이 희생하는 존재라던데? 모성은 원래 그런 거잖아’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겨눈 적 없는가. ‘고부관계라는 게 원래 그런 거야’, ‘정치가들은 원래 다 그렇잖아’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예가 떠오른다.

이런 문장은 얼핏 보면 위로의 말처럼 느껴진다는 데 공통점이 있을지 모른다. 지금 내가 겪는 이 문제가 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다른 이도 모두 한 번씩 겪고 지나가는 일일 뿐이라는 식의 위로 말이다. 뒤이어 찾아오는 건 안도의 감정이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곳이라니 어쨌거나 다행이야 라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금 무서워진다. 그게 정말 다행일까? 위로가 진짜일까? 세상은 원래 그렇고 그런 곳이라는 뉘앙스 속에 숨겨진 자기합리화와 자조의 함정 때문이다.

서른 살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나이라고 중얼거리는 사람은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품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 성찰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고 가슴을 움츠리면서, 지금도 얼마든지 꿈꿀 수 있고 용기 내어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모험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못한다. 청춘이 지나가 버렸다고 쓸쓸하게 회한에 잠길 시간에, 새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원래 그렇잖아’라는 상식의 탈을 쓴 편견만 버린다 해도 우리의 삶은 꽤 많이 달라질 것 같다. 특히 타인의 인생을 나의 혹은 우리의 일방적인 견해에 따라 멋대로 재단해버리는 일은 좀 줄어들 것이다. 순수한 사랑은 나이 따위와는 상관없이 30대도, 70대도 할 수 있다는 점. 슬픈 영화를 보고서 눈물 흘릴 줄 아는 남자는 못난이가 아니라 공감능력이 발달한 사람이라는 점. 모성은 신이 정해준 영역이 아니라 한 인간일 뿐인 젊은 여자의 힘든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 이런 사실을 알 기회를 아예 차단하고 살아가기에는 어쩐지 억울하다. 포기의 언어로 한국사회를 바라본다고 가정할 때 문제의식은 더욱 자명해진다. “정치가란 게 원래 다 그렇지 뭐” “이 나라가 원래 그런 걸 몰랐어?”라고 툭, 냉소적으로 허공에 흩어져버린 말이 우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무기력하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잘 알지 않는가.

‘상식의 탈’ 쓴 편견 버리고 도전을


원래, 본디부터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한쪽 다리를 잃은 상이용사도 한때는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고, 버스의 빈자리를 향해 고단한 몸을 던지는 아주머니도 한때는 수줍은 아가씨였을 것이다. 원래부터 위인이었던 사람도 없고, 원래부터 살인자였던 사람도 없다. 원래부터 불행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도 없고, 평생 행복하기만 한 팔자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우리 제각각의 앞에 펼쳐진, 누구나 공평하게 꾹꾹 밟고 걸어가야 할 제몫의 길만이 우리를 그 자리에 데려다 줄 뿐이다.

정이현 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