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운찬 총리, 국회에서 정제된 발언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2일 03시 00분


정운찬 국무총리는 10일 국회에서 서해교전 상황보고를 하면서 “오늘 벌어진 서해교전은 우발적 충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4시간 뒤 소집된 국회 국방위에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적의 의도를 명확히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보고했다. 김 장관은 정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상황 파악을 못한 상태에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답변했다. 주무장관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북의 의도를 정 총리가 ‘우발적 충돌’이라고 규정한 것은 총리가 해서는 안 될 실수다. 북의 의도는 우리의 대응 수위를 결정하고 사태 진전을 예측해 대처하는 데 절대적 변수이다. 따라서 최대한 신중하고 정확하게 판단해 언급했어야 했다.

정 총리는 같은 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소득세에 대해선 세율 인하를 다시 한 번 검토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계적 경제위기를 맞이해 전 세계가 국제공조 속에 감세와 재정적자 확대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답변해 감세정책의 계속 추진 의사를 밝혔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묻고 답하는 자리에서 총리가 사견(私見)을 언급한 것은 부적절하다. 더구나 주무 부처의 방침과도 배치되는 답변을 했으니 총리 스스로 정부의 신뢰에 흠을 낸 꼴이다.

정 총리는 9일 민간 의료보험에 관한 질의에 ‘민간 의료보험뿐만 아니라 영리 의료법인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급히 연단에 올라가 “민간보험은 보충형으로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의료법인이 개방돼도 비영리의 영리 전환은 없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고쳐 답변했다.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은 일본군 731부대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문은 상식 퀴즈 같아서 좋은 질문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정 총리가 차라리 “잘 모르겠다”고 했어야지, “항일독립군”이라고 답변한 것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답변 태도에서도 정 총리는 국정 총괄자로서의 중후함이나 당당함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총리로 취임한 지 40여 일밖에 안 돼 정치적 감각을 익히거나 국정을 두루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럽다. 총리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정책 판단이나 상황 인식과 관련한 총리의 말 한마디는 자칫 국정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정제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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