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점수 따기用봉사활동’ 거부한 서강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미국 명문대의 입학사정관이 한국인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없고요”라고 말했다. 그 한국인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자 입학사정관은 깜짝 놀라며 “한국 학생의 입학지원서에는 해외봉사활동 경력만 있어서 한국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실화는 대학입학의 수단으로 전락한 국내 봉사활동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서강대가 2011학년도 수시모집부터 특기자 전형을 제외한 입학 지원자의 해외봉사 기록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국내 봉사활동에 대해서도 최대 20시간까지만 점수에 반영하기로 했다. “봉사도 좋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서강대 관계자의 발언은 핵심을 짚고 있다. 서강대가 발표한 과잉봉사 사례를 보면 봉사시간이 1000시간이 넘거나 봉사활동 입증 서류를 큰 상자에 가득 채워 대학에 보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이색 봉사경력을 위해 아프리카나 남미를 다녀온 학생들도 있었다. 고교시절 봉사시간이 1000시간이 넘었다면 과도할 뿐 아니라 믿기도 어렵다. 해외봉사 활동을 한 학생은 경제력 있는 부모로부터 비행기 삯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봉사활동 경쟁은 대학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 이외에 비교과영역을 중시하면서 시작됐다. 최근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더 확대되는 분위기다. 봉사활동의 목적은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을 밖으로 끌어내 배움을 넓히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지역공동체에 기여하는 태도를 기르는 데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점수 따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한 느낌이다. 부모가 봉사활동을 해주고 학생 이름으로 봉사활동 증명서를 받는가 하면 연줄을 동원해 만들어낸 가짜 증명서도 나오고 있다.

과잉 봉사활동의 허점을 꿰뚫어본 서강대의 대응은 의미가 있다. 봉사정신을 키워주려 하기보다는 점수에 매달리는 학부모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입시에 찌든 고등학생에게 일괄적으로 몇십 시간의 봉사활동을 하라는 현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서강대의 실험이 다른 대학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차제에 고교들도 봉사활동 지도를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