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하진]강사님, 우리들의 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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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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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있는 날,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조만간 수험생이 될 아들과 함께 대학을 순례 중이라는 그에게 나는 아이의 성향 성적 희망학과에 대해 상세하게 물으면서 교내 곳곳을 안내했다. 곱게 물든 잎, 화사한 햇살 아래 밝은 표정의 학생, 게다가 친절한 안내원까지. 아이도 엄마도 흡족한 눈치였다. 때맞춰 학생 두어 명이 정답게 인사를 하고 지나는 바람에 나는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덩달아 친구도 “이봐, 아들. 훌륭한 친구를 둔 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지 않냐”고 농담을 건네며 뿌듯해했다.

문제는 교내를 빠져나갈 즈음, 주차장 입구에서 발생했다. 주차권과 할인권을 찾아 든 내 옆에서 친구가 “어머, 이건 좀 심하다”하며 할인권을 들여다보는 거였다. 무슨 문제가 있나 의아해하며 살핀 할인권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4시간, 시간강사용. 순간 차 안에는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 “할인권 내면 공짠걸. 1000원씩 받는 치사한 학교도 있어”라고 발랄한 목소리를 냈지만 친구의 얼굴에는 측은해하는 기색이 떠올랐고 뒷거울로 슬쩍 훔쳐본 아이의 표정도 달라져 있었다.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아이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뭐야, 그러니까 교수가 아니었던 거잖아.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의 비애를 새삼스레 느꼈다든가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의 일로 상처를 받는다면 강사경력 20년이 무색해질 것이므로. 집에 돌아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나는 할인권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매달 초, 행정실에서 강의 시수만큼 발급받는 푸른빛의 작은 종이가 발휘하던 위력, 훈훈하던 공기를 일순 삭 가시게 하는 그것이야말로 시간강사의 현주소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조금 우울하게 했다.

교수 아닌 ‘보따리장수’의 현실

보따리장수. 시간강사의 별칭이지만 이건 어떤 상징이 아니다. 시간강사는 말 그대로의 보따리를 들고 다녀야만 하므로. 강의 시작 전, 강의실을 향해 총총히 걸어가는 이가 달랑 교재만을 들었다면 그이는 아마도 교수이고, 가방을 지고 교재를 안고 허덕이는 이는 필경 시간강사이다. 어쩌다 사물함을 배정 받은 운이 좋은 학기에는 횡재한 기분이 들지만 학기 말이면 어김없이 사물함을 비우라는 공고가 붙고 재배정의 행운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시간강사의 어려움이라면 사물함 따위는 거론의 대상이 아니다. 20년 동안 10여 곳의 대학에서 강의를 한 경험에 비춰 보면 대한민국에는 참으로 별의별 대학이 있고 시간강사에 대한 대학의 처우도 저마다 다양하게 야박하다. 강사 휴게실을 갖춘 학교가 많지 않아 일찍 도착한 날이면 그저 교내를 서성이거나 학과 사무실에서 조교의 눈치를 보며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 가엾은 일이 발생한다.

혹, 제 시간을 채우지 않고 일찍 마치는 강사를 경계해서 오후 4시 이전에는 교문을 닫아걸고 그 앞에는 사납고 엄숙한 표정의 수위아저씨가 지키는 어처구니없는 학교도 있다. 한 달 70만 원가량의 강사료를 지급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똑같은 세 시간 강의료가 50만 원에 못 미치는 대학이 있고 심지어 40만 원 이하의 급여를 주는 대학도 있다. 달랑 한 강좌 강의에 경력증명서에 이력서에 또 무슨 증명서를 학기마다 제출하도록 요구하는가 하면 아무런 사전 통고 없이 강의 배정을 취소하는 곳도 당연히 있다.

선생이라는 직업이, 속성이 그러하므로 일단 학생을 만나면 어느 곳 할 것 없이 수업에 열중하지만 월말에 입금되는 내용을 들여다보노라면 어쩔 수 없이 심정이 복잡해진다. 70, 50, 40, 각색의 숫자로 자신이 평가되는 그 착잡함은 모든 시간강사의 공통된 심리일 수밖에. 그러니, 나처럼 소설쓰기가 본업이노라 세뇌를 하고 사는 이야 또 다르지만 가장인 시간강사의 사정은 차마 형용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산지사방의 대학에서 주 24시간 강의하고 학원 강사로 밤무대를 뛰며 논술 채점 아르바이트를 겸하며 발버둥을 쳐도 가계를 꾸려나가기는 늘 빡빡하고 전임이 될 길은 그야말로 요원하다. 더욱이 올 7월 비정규직법이 발효된 이후로는 2년 이상 강의를 한 대학에서 무자비하게 잘린 시간강사의 수효가 1200여 명이라 하니….

대학교육 절반 맡기며 처우는…

무늬만 교수요, 눈치 빠른 학생조차 꼬박꼬박 ‘강사님’이라 부르는 대한민국 시간강사. 전임교원 5만 명, 시간강사 7만 명이니 대학교육의 절반 이상을 시간강사에게 맡기면서 정작 처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정은 물론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고등교육법 개정안이라는, 오래도록 계류 중인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까닭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불안한 고용 상태, 불합리한 처우에 시달리며, 무시로 참담함에 젖으면서 강단에 서는 시간강사에게 대학교육을 맡기는 한 세계 대학 순위를 논하는 일은 공허하고 공허하다.

서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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