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쌀은 남아돌고 식량자급률은 떨어지는 ‘기형 농업’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6일 03시 00분


쌀이 남아도는데도 식량자급률이 떨어지는 것은 한국에만 있는 기현상이다. 올해 전국의 쌀 생산 예상치는 465만 t으로 예상 소비량보다 28만 t이나 많다. 작년에도 풍작으로 30만 t 이상 남아 현재 82만 t가량의 쌀이 창고에 쌓여 있다. 내년에는 100만 t 이상으로 늘 것이다. 반면 1980년 56%였던 식량자급률은 지난해 사상 최저치인 26.2%로 떨어졌다.

식량자급률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는 쌀 중심의 식생활이 바뀌고 있는데도 쌀 중심 농업이 그대로인 데 있다. 소비가 감소하는 쌀 생산은 줄이고, 소비가 증가하는 곡물 생산은 늘리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쌀 생산을 줄여나가야 할 처지에 쌀 생산조정제 등 생산 감축 정책은 흐지부지됐다.

주로 수입에 의존하는 밀, 콩의 소비는 급격히 늘었으나 국내 생산이 이를 따르지 못했다. 2001년 77%였던 보리쌀 자급률은 작년에 36.1%로 떨어졌고 콩 자급률도 2006년 13.6%에서 7.1%로 하락했다. 쌀농사에 대해서만 직불금을 지급하고 공급이 부족한 밭작물에 대해서는 직불금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식량자급률은 떨어지고 쌀은 남아도는 ‘기형 농업’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일부 농민단체는 대북 쌀 지원 재개를 요구하고 있으나 길게 보면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대북 지원을 이유로 쌀 생산을 늘리면 쌀값이 북의 식량 수급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소비하는 작물은 수입에 맡기고 북한에 주려고 보조금을 주며 쌀농사를 짓게 하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이 아니다.

쌀 시장 개방을 미루느라 의무 수입하는 외국쌀도 쌀 과잉을 부채질하고 있다. 2005년 22만5500t에서 시작했으나 2014년에는 국내 쌀 소비량의 12% 수준인 40만8700t을 수입해야 한다. 쌀을 관세화하면 앞으로 10년 동안 2000억 원 내지 4000억 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쌀 관세화를 언제까지 미뤄둘 수는 없는 일이다.

밀 소비를 줄이고 최대한 쌀로 대체해야 한다. 정부는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쌀 매입자금 무이자 융자, 쌀 재고분 주정용 공급, 학교 급식 사용 확대 같은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론 역부족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쌀 막걸리처럼 값싸고 질 좋은 쌀 식품을 다양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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