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계희정]소통의 예술, 실내악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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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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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앙상블 ‘빌라 무지카’는 유럽의 뛰어난 연주자가 모인 최고의 앙상블 단체이다. 또 차세대 음악가를 선발하여 함께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의 쟁쟁한 음악가와 함께 몇 년간 연주할 기회를 가졌다. 스스로 배우는 학생이라고만 생각하던 시절에 음반에서나 이름을 볼 수 있었던 잉고 고리츠키, 클라우스 투네만, 나탈리야 구트만 같은 대가와 나란히 앉아 연주하니 떨리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여 어쩔 줄 몰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히려 그들은 나를 학생이라는 편견 없이 음악가로 대하고 연습 중 내 의견을 물었다. 연주 횟수가 늘어가면서 내 눈에는 연습 과정에서 각각의 연주자가 어떻게 해석을 이끌어내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여 결과를 만들어내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분야의 대가일수록 대부분 인격적으로 성숙한 분이 많아서 연주 실력 이외에도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실내악 앙상블이라는 데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생각이 다르고 배경이 다른 음악가가 모여 앙상블을 할 때는 당연히 많건 적건 실력 차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력이 더 나은 사람의 소리만 들리게 하는 것이 더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모든 연주자의 소리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동등하게 중요해야만 좋은 앙상블의 기초가 된다. 나이가 많으냐 적으냐, 같은 지역 사람이냐 아니냐 등 음악 외적인 요소로 인해서 중요도를 결정하면 좋은 앙상블을 이룰 수가 없다. 개인의 실력이 조금 모자란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서로 타협점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부족한 실력을 받아들이고서 그 가운데 가장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각기 다른 소리들을 타협하는 음악


개성이 강하고 표현력이 뛰어난 음악가 쪽으로 나머지 사람이 맞춰주면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이 완성될 것 같지만, 정작 결과물을 놓고 보면 앙상블로는 그다지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긴 시간 지속되는 앙상블 팀이 되려면 음악적으로 의견이 다를 때 이를 마음에 쌓아두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교환해야만 한다. 이런 점을 제때에 꺼내놓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면 언젠가는 다른 구실로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다만 이때에는 의견을 말하거나 받아들이는 쪽 모두 음악적인 지적을 인간적인 지적으로 혼동하지 않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남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한다면 좋은 앙상블을 이루기 힘들다. 만일 근거가 없는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면 앞으로 함께 연주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질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의견은 하나도 없이 항상 다른 사람이 방향을 제시하기만 기다리는 사람과 앙상블을 이루는 것도 고집과 싸우는 것만큼이나 지루한 일이다. 또 그런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음악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나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연습 중에 의견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세상에는 이 두 가지를 너무 나눠서 문제인 사람도 있다. 유럽의 어느 유명 현악4중주는 다른 나라로 연주를 떠날 때 절대 같은 비행기를 타지 않을 정도로 서로 인간적으로 융화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연주는 정말 세계 최고의 앙상블이다.

어떤 경영학의 대가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각각 뛰어난 개인이 모인 집단을 이끌어 나가는 경영자의 특별한 유형으로 꼽았다. 음악가 집단이 보통과 좀 다르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이 모여 산다는 건 결국 어디나 다 비슷한 일이 아닌가 싶다. 각각의 구성원이 악기를 배워야 한다는 점에 눈을 돌려 1인 1악기를 초중고교 교육에 적용하면 어떨까? 개인이 악기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몇몇이 앙상블을 이뤄 서로 배우고 연주하는 시간을 마련한다면 단체 안에서 서로 대등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일정 시간 안에 공동의 완성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림으로써 1인 1기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릴때부터 의견 교환하는 훈련을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음악학교에서는 솔리스트가 되는 교육이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전공자에게 앙상블 훈련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음악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숙한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상대방이 틀렸다고만 하지 말고 서로 다른 가치로서 받아들이는 아량과 자신의 생각을 지켜 나가면서도 서로 융화하는 소통이 가능하려면 다양한 가치를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가부터 다양한 가치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앙상블을 보여주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음대의 앙상블 강의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수준 높은 정치가와 경영 마인드를 지닌 사업가나 법률가 같은 사회 인재를 키워내는 날이 언젠가 오기를 꿈꿔 본다.

계희정 클라리넷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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