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훈]잘못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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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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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이 맞아야 한다. 남녀도, 조직과 조직 간의 결합도 그렇다. 양과 음, 오행(五行)의 조화가 맞아야 신랑과 신부가 잘살 수 있다.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결합은 얼핏 보기에 그럴듯했다. 둘 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책임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또 영재들을 잘 길러 적소에 배치하는 상보(相補)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합방 1년 8개월여, ‘혹시나 했지만 역시…’ 실험은 성공적이지 않은 것 같다.

교육만 있고 과학기술은 안보여

2008년 정부조직 개편으로 탄생한 12개 통합부처의 조직 융합 실태를 진단한 행정안전부의 분석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소통이 잘되지 않고 인사에서도 과학기술부 출신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상이하게 운영되던 인사시스템 재정비, 기획 감사 인사 재무 등 핵심보직의 질적인 배려 필요’라는 처방이 나왔다.

교육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때로 지나치다. 반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너무 미미하다. 교육은 있는데 과학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의 국정감사장에서도 그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로호의 재발사를 무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묻는 초보적인 질의가 있긴 했다. 나로호 발사가 실패하자 ‘과기부 없애더니 이럴 줄 알았다’는 글이 인터넷에 떴다.

생존능력이 강한 교육 관료들에게 물정 모르는 과학기술 관료들은 밀린다. 그래서 초대 교과부 장관에 재료공학을 전공한 교수 출신을 임명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5개월 남짓 단명에 그쳤다. 통합부처의 화학적 결합을 이루기엔 짧은 기간이다. 지금 16명의 각료 중 정통 이공계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래도 여당의 대선후보군에 이공계 출신이 한 명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공계 홀대론’이 나올 만하다.

정치학 박사인 안병만 장관이 과학기술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일본 교토에서 최근 열린 제6회 ‘사회 속의 과학기술(STS) 포럼’에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이 담합하듯 첨단기술 장벽을 쌓고 있는 요즘엔 과학외교도 필요하다. 과학기술 분야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이 행사에는 세계 21개국의 과학기술부 장관과 11명의 노벨상 수상자,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을 비롯한 100여 명의 저명인사가 참석했다.

노무현 정부는 탄핵정국 직후 2004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다. 그 후 단행한 정부조직 개편에서 과학기술 부총리를 신설했다.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과 효율적인 자원 배분, 이공계 기피문제 해결을 비롯한 과학입국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의 여파인지 4년여 만에 2명의 부총리를 끝으로 이 제도는 막을 내렸다. 그와 함께 과학기술부도 사라졌다. 부처 통합으로 시너지효과를 내기는커녕 과학기술 분야의 추동력만 약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安장관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왜 이렇게 됐는지, 방만함은 없었는지 과학기술 관료들이 먼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과학기술계 역시 대학과 기업을 위해 제 역할을 다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교육부 출신의 한 간부는 “툴툴거리는 게 제 밥그릇 찾기 위한 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래도 과학기술 분야는 예산이 많이 늘었다. 우리는 가급적 회의도 사무실에서 하고 값싼 음식점에서 밥 먹는데 그쪽은 호텔에서…”라며 푸념했다.

‘나뉜 지 오래면 합쳐지고, 합친 지 오래되면 나뉜다(分久必合, 合久必分).’ 삼국지의 첫머리다. 그러나 합친 것을 다시 쪼개기에 20개월은 너무 짧다. 궁합이 맞지 않아도 잘사는 부부가 있다. 아니, 교육과 과학기술은 어찌 보면 궁합이 맞다. 둘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 아니다. 문제는 속궁합을 맞추는 일이다. 안 장관이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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