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김제동 김미화 그리고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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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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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 92세로 세상을 떠난 월터 크롱카이트는 1962∼81년 19년 동안 CBS의 앵커를 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물로 꼽혔다. 그는 제2차 대전 때 UPI의 전쟁 특파원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주요 격전장을 누볐다. 전후에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취재했고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앵커로 자리 잡고난 뒤에도 격동의 현장을 뛴 탄탄한 취재력으로 사실의 전달에 충실했다.

그가 드물게 의견을 말하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컸다. 1968년 베트남전쟁을 취재한 특집 보도 말미에 “미국은 승리자로서가 아니라, 협상을 통해 이 전쟁에서 합리적으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며 기자로서 개인적 견해를 붙였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이 보도를 보고 “내가 크롱카이트를 잃었으니, 미국 중산층을 잃어버렸구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국민이 공감할 말이 아니면 함부로 의견을 달지 않았다.

그가 존 F 케네디부터 지미 카터까지 5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백악관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일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뉴스 진행자로서 사실 보도에 충실하고 어설픈 논평가로 행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뉴스 방송의 사회자이지, 논평가나 분석가가 아닙니다. 나는 세상일에 통달한 현자(賢者)가 되려는 욕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장수앵커 크롱카이트의 비결

한국 텔레비전에는 설익은 논평, 균형이 잡히지 않은 기획이 비일비재하다. 20, 30대 방송기자들이 사건 보도를 한 뒤에 간혹 세상을 준엄하게 꾸짖을 때면 시청자들은 당혹스럽다. PD들이 만드는 기획물은 거개가 젊은 비정규직 작가들이 대본을 쓴다. KBS 이사를 지낸 한 교수는 “일부 방송프로그램이 균형 잡힌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데는 새파란 PD와 비정규직 작가의 사고가 걸러지는 과정 없이 그대로 전파를 타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KBS가 가을 프로그램 개편 1주일을 남겨두고 스타 골든벨의 MC 김제동 씨를 전격적으로 교체해 논란이 일었다. 김영선 KBS 예능국장은 “김 씨가 4년이나 맡았고,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데뷔 초기와 달리 유명세가 높아지면서 제작진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MC 교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 제작진이 세 번이나 회의를 열어 내린 건의를 이런 반응이 두려워 묵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치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김 씨의 인기가 높을 때 참고 있었던 제작진의 반란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병순 사장은 ‘연임을 노리고 퍼포먼스를 한다’는 변희재 씨의 비판에 대해 “김제동을 자른다는 사전 보고를 못 받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스타 골든벨은 ‘100분 토론’과 달리 뜨거운 이슈를 다루는 프로도 아니다. 나는 2004년 김 씨를 5시간가량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내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묻자 그는 “공인으로서 정치적 논쟁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남에게 웃음을 주는 직업인은 그냥 속으로 간직하고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비정치적인 인간형인데,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편협하게 세상을 보는 것 같다. 김 씨는 동아일보에 칼럼을 6차례 쓰다 최근 그만두었다. 정치와는 상관없는 생활 에세이였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이 못 쓰게 한다며 중단했다. 그를 정치성 모임의 MC로 끌어내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김미화 씨와 김제동 씨는 구분해서 보고 싶다. 김미화 씨의 말과 글은 신문 비판을 넘어 조롱 수준이다. 가끔 그의 ‘미디어 비평’을 싣는 협회보는 개그우먼이 메이저 신문을 때리면 더 망신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가 쓴 칼럼들을 읽으며 데뷔 초기에 일자눈썹을 하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던 순악질 여사가 떠올랐다. MBC 보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분분해도 MBC를 향해서는 한 번도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적이 없다.

정치적 편향은 短命부른다

손석희 씨는 ‘100분 토론’의 시청자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다르게 표현한 것 때문에 문제가 됐다. 손 씨의 ‘정치적 편향성’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정치적 편향성이라면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지상파 TV는 사적(私的) 자원을 쓰는 신문보다 정치적 중립성에 더 유의해야 한다.

할리우드 배우들은 특정 대통령후보를 지지하고 정치자금도 내지만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는 인기인들은 다르다. 대통령이 다섯 번 여섯 번 바뀌어도 계속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방송인이 되려면 크롱카이트처럼 실력과 안목을 갖추고, 정치적 의견을 말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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