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염희진]부산영화제 감독 진땀 뺀 ‘관객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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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6일 02시 55분


13일 밤 부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점.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인 ‘사랑과 다른 악마들’ 상영이 끝날 무렵 이 영화를 감독한 코스타리카 출신 일다 이달고 감독이 극장에 찾아왔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이달고 감독은 전날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GV·Guest Visit)’가 하루로 끝난 게 아쉬워 한 번 더 기회를 갖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대화는 예정된 30분을 훌쩍 넘겼고 관객과 감독은 극장 문을 닫자 밖으로 나가 30분이나 더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회가 끝나고 열리는 ‘관객과의 대화’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관객들의 송곳 같은 질문으로 매번 깊은 인상을 주었다.
10일 밤 영화 ‘파주’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질문의 대부분이 감독에게 몰렸다. “사람들이 죄의식 때문에 정의로운 행동들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첫 번째 떠남은 미움 때문이고, 두 번째는 사랑에 빠진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서인데, 마지막 떠남의 목적은 무엇이죠?” 같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박찬옥 감독에게 쏟아졌고 ‘관객과의 대화’는 깊이 있는 토론회가 됐다.
평론가 출신 정성일 감독에게도 관객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그의 감독 데뷔작 ‘카페느와르’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롱 테이크 장면이 너무 낭만적인데 전체 맥락에 어긋나는 것 같지 않나”라는 지적까지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영화제 자원봉사자 정미지 씨(22·뉴욕주립대 연극 전공)는 “다른 영화제의 경우 배우에 대한 사적인 질문이 대부분이지만 부산영화제에서는 이야기 구조, 미장센, 색채, 원작과의 비교 등 감독들을 진땀 흘리게 하는 질문들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최다 상영작, 화려한 게스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커진 몸집만큼 아시아의 대표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관객과의 대화’와 ‘오픈토크’ ‘아주담담 토크’ 등 다양한 대화 프로그램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올해 ‘관객과의 대화’ 횟수는 지난해보다 40여 회가 늘어난 총 210차례. 그러나 횟수보다 큰 수확은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날카로운 감식안을 가진 ‘똑똑한(smart) 관객층’의 확대라고 영화제에 참가한 국내외 영화인들은 입을 모았다.
똑똑한 관객의 성장은 영화인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도록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하고, 그렇게 해서 더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면 이는 더욱 열성적이고 눈 밝은 관객을 키우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 같은 순환이 앞으로 가장 든든한 ‘한국영화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대화에 참여한 관객들의 반짝이는 눈에서 읽을 수 있었다.
염희진 문화부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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