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파업

  • 입력 2009년 10월 13일 0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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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자체를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법원 내 이른바 ‘진보적’ 성향을 가진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10일 마련한 공개세미나에서 인천지법 최은배 부장판사가 한 말이다. 그는 ‘노동사건 심리(審理)상의 문제점’을 주제로 한 발표문에서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우리나라의 법해석은 1800년대 야만적인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사회인식과 역사의식의 퇴영적인 발로”라고 주장했다.

▷1981년 미국 연방항공청 소속 관제사 1만3000여 명이 연봉인상을 내세우며 파업에 들어가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48시간 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관련법에 따라 전원 해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방 공무원의 파업을 금지한 법률에 근거해서다. 1955년 제정돼 1971년 대법원의 합헌판결을 받은 이 법률은 파업 시 1년 이하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22건의 연방 공무원 파업이 묵인돼 와 이번에도 엄포에 그칠 것이라고들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48시간 뒤 레이건 대통령은 1만1345명을 해고했다. 영국도 1984년 탄광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정면 대응한 끝에 ‘파업병’을 치유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역시 파업 자체를 형사처벌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우리나라 법은 파업의 목적이 근로조건 개선이 아닐 경우엔 파업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정치파업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경우 흔히 ‘불법 파업’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파업이 아니라 불법행위일 뿐이다. 이 같은 불법행위를 법에 따라 처벌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직무유기다. 토론자로 나선 이병희 수원지법 판사는 “발표자의 견해에 따를 경우 파업이 전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해도 노조가 아무런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반론을 폈다.

▷강성노조의 과격한 투쟁으로 국민의 피로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작년과 올해 일어난 34건의 분규 중 33건이 강성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있는 기업에서 일어났다. 폭력까지 동원한 불법 행위를 방치하면 기업 현장은 무법천지가 될 판이다. 법관은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시각에서 노사관계를 바라봐야 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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