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다양한 행사와 함께 각 언론사에서 마련한 기획보도와 프로그램이 한글날을 기념했지만 많은 수가 한글 자체보다는 한국어에 관한 것이었다. 한 방송뉴스는 ‘한글 홀대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여주면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뒤에 놓인 꽃밭의 이름이 ‘플라워 카펫’이라는 영어 이름임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나온 ‘플라워 카펫’ ‘그린푸드존’ 등 외국어 사용은 ‘한글’을 홀대한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홀대한 것이라 하는 게 더 정확했다.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에서 열린 훈민정음학회에서 대만의 소수민족인 ‘부눈’족을 위한 한글 서사(書寫)체계를 발표한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전광진 교수는 이런 상황을 염려하며 “한국어와 한글은 엄연히 다르게 인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8월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해 화제가 된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에 대한 보도와 일반 사람들의 인식을 예로 들었다. 전 교수는 “찌아찌아족에게 수출한 것은 문자체계인 한글이지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아니다”며 “그 민족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풍성히 가꿀 수 있는 ‘도구’를 수출한 것인데 그 민족 고유의 것들을 잠식하는 우리 ‘콘텐츠’를 수출한 것처럼 이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발상은 자칫하면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후진 민족들에게 전수한다’는 ‘문화제국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글날 전후로 찌아찌아족에 대한 방송과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한글의 수출’임을 명확히 해주지 않으면 이런 오해에 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563년 전 세종대왕이 반포한 것은 한국어나 문화가 아니라 한글이라는 문자체계였다. 한국어와 한국 고유문화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좋지만 10월 9일 한글의 생일에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그 무엇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우수한 도구 한글의 의미와 가치에 더 주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미지 사회부 기자 imag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