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미지]찌아찌아족에 보낸 건 한글‘도구’

  • 입력 2009년 10월 1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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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돌을 맞은 한글날인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 발전에 힘쓴 유공자 10명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아일랜드인인 케빈 오루크 경희대 명예교수와 중국 톈진(天津)외국어대 최희수 교수를 비롯해 국내외 유수 학자들이 명단에 올랐다. 모두 수십 년 한국어의 연구와 보급에 기여한 석학들이었지만 정작 이들 가운데 ‘한글’ 학자는 없었다.

10월 9일 다양한 행사와 함께 각 언론사에서 마련한 기획보도와 프로그램이 한글날을 기념했지만 많은 수가 한글 자체보다는 한국어에 관한 것이었다. 한 방송뉴스는 ‘한글 홀대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여주면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뒤에 놓인 꽃밭의 이름이 ‘플라워 카펫’이라는 영어 이름임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나온 ‘플라워 카펫’ ‘그린푸드존’ 등 외국어 사용은 ‘한글’을 홀대한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홀대한 것이라 하는 게 더 정확했다.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에서 열린 훈민정음학회에서 대만의 소수민족인 ‘부눈’족을 위한 한글 서사(書寫)체계를 발표한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전광진 교수는 이런 상황을 염려하며 “한국어와 한글은 엄연히 다르게 인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8월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해 화제가 된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에 대한 보도와 일반 사람들의 인식을 예로 들었다. 전 교수는 “찌아찌아족에게 수출한 것은 문자체계인 한글이지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아니다”며 “그 민족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풍성히 가꿀 수 있는 ‘도구’를 수출한 것인데 그 민족 고유의 것들을 잠식하는 우리 ‘콘텐츠’를 수출한 것처럼 이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발상은 자칫하면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후진 민족들에게 전수한다’는 ‘문화제국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글날 전후로 찌아찌아족에 대한 방송과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한글의 수출’임을 명확히 해주지 않으면 이런 오해에 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563년 전 세종대왕이 반포한 것은 한국어나 문화가 아니라 한글이라는 문자체계였다. 한국어와 한국 고유문화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좋지만 10월 9일 한글의 생일에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그 무엇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우수한 도구 한글의 의미와 가치에 더 주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미지 사회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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