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청문회에 비친 우리들의 초상

  • 입력 2009년 10월 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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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도 흠 없는 사람이 없나?”

추석 연휴 직전에 열린 국무총리와 일부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이들은 또다시 낙담했다. 청와대가 나름대로 엄격히 사전 검증을 했다는 후보자들의 도덕적 흠결과 실정법 위반 사례가 줄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진땀 흘린 후보자들도 곤혹스러웠겠지만 엄선된 엘리트들의 됨됨이를 새삼 확인한 국민의 허탈함도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국정을 이끌 고위 공직자라면 능력은 물론 윤리성 면에서도 범부(凡夫)보다 나아야 하거늘 오히려 지탄받을 소지가 있는 삶을 살아왔으니….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선진국과 현저한 차이가 있는데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는 자괴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청문회에서 호통을 친 국회의원들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더 깨끗한 결과가 나올까?

솔직히 한국의 각계각층에서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장담할 수 없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강변하려는 게 아니라 산업화에 따른 물신(物神)의 시대를 헤쳐 오면서 우리 사회가 성취에만 매달려 도덕적 가치를 등한시해 왔음을 반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에 논란이 된 위장전입, 탈세, 병역기피 등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회적 병폐다. 자식을 위해, 또 재테크 차원에서 별다른 죄책감 없이 불법, 편법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판에 윤리와 준법이 존중받기는 힘들다.

미국의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Trust(신뢰)’라는 저서에서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평가한 게 1990년대 중반이다. 그 후 한국은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유독 정직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데선 큰 진전이 없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가 40위인 것은 우리의 국격(國格)을 되돌아보게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6월 발표한 청소년부패인식도 조사에서 청소년의 76.8%가 우리 사회가 부패하다고 답변한 것엔 변명할 여지도 없다.

이런 풍토에선 엄격히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쓴 청백리 감을 찾아 치국(治國)을 맡기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른바 ‘요령 있는 사람’일수록 평소 법, 윤리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넘나들며 살아왔을 개연성이 크다. 이번 개각에서 청와대는 어느 부처에 대해선 80여 명의 후보자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고도 국민의 눈총을 받았다.

우리는 국가예산의 13% 정도를 교육 분야에 쏟아붓지만 나라를 이끌 제대로 된 동량(棟梁)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뼈저린 자각을 해야 한다. 공직이 출세가 아니라 사리(私利)를 버리고 국가에 헌신해야 하는 두려운 자리임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공직 준비생들도 대박을 꿈꾸며 책만 파서는 곤란하다. 앞으론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왔는지가 전문성 못지않게 공직 기용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혹시 이번 추석에 ‘흑심(黑心)’이 담긴 선물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은 이들은 청문회를 보고 탄식할 자격도 없다. 나부터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윗물이 탁한 것만 탓해서는 신뢰사회 건설은 요원하다.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결국 우리 가운데서 나온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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