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진우]‘이념보다 실용’ 확인한 獨총선

  • 입력 2009년 10월 1일 02시 48분


코멘트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럽을 휩쓰는 우경화의 바람은 독일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쳤다. 9월 27일 치른 총선 결과 지난 4년간 대연정의 파트너였던 사민당은 야당 신세가 되고 독일은 11년 만에 다시 보수연정으로 회귀하게 됐다. 유럽의 우경화 현상은 중도우파가 중도좌파를 압도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이미 확연하게 드러났다. 유럽연합 27개국 중 불과 3개국에서만 좌파가 승리했을 따름이었다.

위기극복 파트너로 보수 선택

작금의 경제위기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무절제한 탐욕이 초래한 전대미문의 사태라는 점에서 오히려 시장친화적인 우파 정치세력에게 불리한 선거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6월의 유럽의회 선거에 이어 이번 독일 총선에서도 유럽의 유권자는 오히려 좌파를 버리고 우파를 선택했다. 무슨 일일까.

이번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인 기민-기사연합이 제1당이 되리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예상됐다. 메르켈 총리가 보여준 리더로서의 개인적 매력뿐만 아니라 경제위기를 헤쳐나감에 있어 그가 총리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연임 여부보다는 독일 국민이 메르켈 총리의 국정파트너로 과연 누구를 선택할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사민당인가, 자민당인가? 대연정의 지속인가, 아니면 보수 연정의 새 판인가? 메르켈 총리의 우파 개혁을 제어할 견제세력인가, 아니면 우파 개혁의 조력자인가?

독일 유권자의 선택은 자민당과의 우파 연정이었다. 메르켈 총리를 제어하기보다는 그를 자유롭게 하기를 원했다. 이번 선거에서 사민당은 지난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무려 11%가 넘게 하락하는 참담한 패배를 맛봐야 했고, 자민당은 지난번보다 5%가량 높은 14.6%의 득표율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왜 독일 유권자는 지난 4년간의 좌우 대연정에 종지부를 찍고 우파 연정을 택했을까.

무엇보다 경제위기의 여파가 길게 드리운 지금 사민당이 책임 있는 국정운영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우파 정당은 과거 좌파의 전유물이었던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과 국가 주도적 사회안전망 구축에 먼저 나섰다. 좌파 어젠다를 우파가 선점해버린 셈이다. 이에 비해 자신의 어젠다를 우파에 뺏긴 좌파는 우파와 차별성이 있으면서도 실현성이 있는 참신한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우파의 주장을 되풀이하거나 현실성 없는 공허한 구호만 내걸었을 뿐이다. 국민이 좌파를 경제위기 극복의 주역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공허한 사민당 구호에 등돌려

메르켈 총리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개입으로 독일 경제를 잘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경제위기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작았고 실업률 또한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국민은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위기극복에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반면 사민당은 경제위기 극복에 있어 메르켈 총리를 능가하는 임무 수행을 해낼 수 있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 사민당의 전통 지지 세력도 등을 돌렸고 마침내 전후 최저의 득표율로 대연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발 빠르게 이념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취하는 동시에 감세정책, 노동시장 유연화, 원전 가동 재개, 아프가니스탄 주둔 지속 등 전형적인 우파 정책을 표방하는 메르켈 총리의 보수 연정이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지 자못 궁금하다.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