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개헌방정식

  • 입력 2009년 9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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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일단 ‘필요하다’는 데는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본다. 사실 ‘구시대의 막내’였지만, ‘새시대의 맏형’은 못 된 노무현 정권이 끝난 때부터 민주화를 일군 ‘87년 체제’는 종언(終焉)을 예고했다.

문제는 실현가능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금의 정치 지형과 생산성으로 볼 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개헌에 대해 “너무 광폭적으로 헌법에 손을 댄다면 이뤄질 수 없다”면서 “권력구조 문제로 제한하면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력구조에 국한된 개헌이라도 가능할까.

우선 시기적으로 벌써 늦은 감이 있다. 내년 6월 2일은 전국 동시 지방선거. 내년 초부터는 좋든 싫든 지방선거 정국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전에 개헌하려면 늦어도 연말까지는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내년 지방선거 이후는? 그래도 내년 말까지밖에 시간이 없다. 2011년 이후는 정권 후반인 데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현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권력구조 개헌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대통령의 권력을 국무총리와 나누는 분권형대통령제에 기반한 이원정부제. 다른 하나는 4년 중임 대통령제다.

이원정부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반대다. 박 전 대표는 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4년 중임제를 하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미래권력’이 손에 잡힐 듯한 50여 명의 친박계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9월 20일 현재 국회 의석수는 한나라당 167석, 민주당 84석, 자유선진당(17석)을 비롯한 비교섭단체가 40석. 모두 291석이다.

분권형대통령제 개헌을 추진한다면 현재로선 개헌안 발의조차 쉽지 않다. 친박계가 반대할 경우 발의요건인 ‘국회의원 재적과반수(146명)’를 채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지방선거 이후 개헌 검토’를, 자유선진당은 ‘강소국연방제를 포함한 광폭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이 분권형대통령제 개헌안을 수용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한나라당이 의견을 모으지 못하면 개헌안 통과는 불투명하다. 개헌안 통과에는 ‘재적의원 3분의 2(194명·9월 20일 기준)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4년 중임제는 어떨까? 다른 당은 접어두더라도 지금은 한나라당 친이명박계에서조차 부정적인 기류가 많다. 또 어렵게 당내 합의를 이끌어내 개헌안을 발의해도 야권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개헌안 통과가 불가능하다. 뚜렷한 대선주자가 부각되지 않은 야당으로선 4년 중임제 도입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개헌의 정치적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낮은 실현가능성에도 개헌이란 화두를 놓아버리기는 어려운 게 우리가 맞닥뜨린 국가적 상황이다. 대선 때만 되면, 아니 이제는 대선 이후에도 온 나라가 두 동강, 세 동강 나는 현 대통령제로는 미래로 나가기 어렵다. 더 열린 시각으로, 더 장기적 관점에서 의원내각제까지를 포함한 다양한 권력구조 개헌안을 국가적 어젠다로 검토할 때가 됐다.

개헌의 당위성과 실현가능성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국정치의 미래가 여기에 달렸다.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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