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우열]‘검사, 기자접촉 금지’는 명백한 언론통제

  • 입력 2009년 9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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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기자를 만나지 말라고 한다. 이제는 훈령을 어기는 게 된다면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30대 중반의 A 검사는 최근 기자의 전화에 극도의 긴장감을 표시했다.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수사공보제도 훈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올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중 서거한 뒤 법무부는 석 달 동안 수사공보제도 개선 훈령안을 만들었다. 이 훈령안은 현재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들어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훈령안에 들어 있는 ‘부장검사·평검사, 기자 접촉 금지’ 조항은 벌써부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동안 ‘평검사는 기자 접촉을 자제하라’는 검사장이나 총장 등의 지시는 있었지만 이것이 ‘훈령’으로 명문화되면 자칫 검사들이 ‘범법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조항은 기자들은 물론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때문에 만들고 있는 훈령이 ‘기자 접촉 금지’까지 나아가는 것은 검찰의 언론통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논란이 되자 검찰은 “검찰 내부에서 새 나간 게 없다. 기자들이 다른 데서 취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게 맞다면 ‘평검사의 기자 접촉’으로 유출된 정보는 없었다. 게다가 대형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나오는 검찰에 대한 비판도 ‘딥 스로트(Deep Throat·내부고발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검찰의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언론플레이에 대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마련된 훈령이 노무현 정부 때 강행됐던 이른바 ‘취재선진화 지원방안’의 ‘기자 접촉 금지’ 조치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방안은 “공무원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을 무력화하자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다 정권교체 후 폐지됐다.

2001년 김형윤 전 국가정보원 경제단장 수뢰사건 은폐 의혹, 2002년 김대업 씨의 공작정치 수사 등은 검찰 내 ‘딥 스로트’가 없었으면 그 실체나 상세한 뒷얘기가 알려질 수 없었다. 한 사람뿐 아니라 한 정권의 명운을 좌우해 온 검찰 수사에 대한 정확한 실체 규명을 위해 언론과 검사들의 접촉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를 전부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무조건 접촉을 금지하라고 하는 것은 검사 역량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라는 일선 검사의 볼멘소리가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최우열 사회부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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