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150일 전투’

  • 입력 2009년 9월 16일 2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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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고 나서 북한 전역에 ‘장마당’이라는 시장이 생겨났다. 배급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탓이다. 의사 교사 연구원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도 시장에 나가 부업을 해야 할 정도가 됐다. 2003년부터는 종합시장이 공식 허용됐다. 시장 안에 판매대를 가진 상인은 어느 정도 돈도 번다. 대부분은 시장 밖에 좌판을 벌이는 ‘메뚜기’, 값싼 곳에서 사서 비싼 곳에 갖다 파는 ‘달리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파는 ‘똑똑이’ 신세다. 북의 ‘시장 경제’는 이제 되돌리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북은 4월에 주민 총동원령인 ‘150일 전투’를 선포했다.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식량 생산 등 활동에 매진하자는 운동이다. 보안원(경찰관)들은 ‘누워 있는 사람 빼고 모두 농촌으로 나가자’는 방침에 따라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즉시 체포해 농촌으로 끌고 갔다. 오늘 이 전투가 끝난다. 하지만 23일부터 연말까지 ‘100일 전투’가 또 시작된다. ‘150일 전투’의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일심단결의 위력을 남김없이 폭발시키자”던 노동신문의 독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식의 총동원령은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부터 애용해온 수법이다. 1974년 ‘70일 전투’를 시작으로 그동안 10차례 가까운 ‘전투’를 했다. 그러나 잦은 총동원령은 오히려 계획경제를 망치는 요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한된 자원과 인력을 특정 분야에 과도하게 쏟아 붓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운이 총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전투’가 실패하자 후계자 구축작업을 중단했다는 분석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요즘 북에는 “승냥이(권력자)와 여우(돈 많은 상인)만 남았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정권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다. 상인들은 ‘전투’에 동원되면 생계유지가 어려워져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같다. 반항과 소규모 시위도 해보지만 가혹한 처벌 앞에 공포 분위기만 더해 간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와 식량지원 중단으로 죄 없는 주민들이 더 죽을 지경이다. 김정일 정권의 설 땅이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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