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親서민과 親기업

  • 입력 2009년 9월 15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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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친(親)서민 행보를 계속하면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이 대통령은 그 대신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 간 가격) 담합 사례가 있으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같은 발언을 했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도 노량진 수산시장, 복지시설 방문 등 빠듯한 일정을 보내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회동 제의에는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것만 놓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서민만 챙기느라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소홀히 한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서민에 좋은 정책이 기업에 나쁠 리 없고, 기업에 좋은 정책이 서민에 해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도 작년 말 “어려운 사람들이 빨리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복지”라며 “그러려면 일자리를 주는 게 중요한데 이는 기업이 잘돼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대표적 친서민 정책이 희망근로사업일 것이다. 1조7000억 원을 투입해 2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경제위기에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긴 하나, 기업에서 그만한 일자리가 나왔다면 국민이 낸 1조7000억 원의 세금은 더 생산적인 곳에 쓰일 수 있었다. 일자리 많이 만들고 세금 잘 내는 기업을 모두가 격려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친서민 정책만으로는 좋은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기 힘들다. 작년보다 취업자가 20만 명이나 줄어든 가운데서도 지난 1분기에 과학기술 보건복지 교육서비스업 분야의 상용근로자는 26만6000명이 늘었다. 서비스업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면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 여기 취업한 서민은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도 받을 수 있다. 규제개혁 같은 친기업 정책이야말로 친서민 정책인 셈이다.

2008년 기업이 낸 법인세가 39조2000억 원이다. 개인이 낸 36조4000억의 소득세보다 많다. 세금을 내는 근로자는 전체의 49.6%에 불과하다. 4인 가구 소득 연 1646만 원 이하인 경우엔 이미 면세혜택을 받고 있어 세금을 깎아주려 해도 깎아줄 수가 없다. 기업이 잘 돼야 법인세수가 늘고 이 돈으로 보육지원, 등록금 지원 등 친서민 정책도 가능해진다.

정부가 친서민 기조로 지지율을 올리면서 기업 활동을 북돋우는 데 소홀히 한다면 결과적으로 민생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진정 서민을 생각한다면 일자리를 빼앗는 강경노조, 서민을 위해 봉사할 줄 모르는 공기업과 공공노조부터 제대로 다스려야 한다.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서민행보는 좋지만 민원인에게 약속을 쉽게 안 했으면 좋겠다. 대통령 만나는 게 로또라는 얘기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나누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서민의 건강한 근로정신을 자극하는 것이 근원적 친서민 정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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