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전성철]힘센 법원노조, 수수방관 법원

  • 입력 2009년 9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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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투표 바람’이 불고 있다. 21, 22일 이틀간 실시되는 법원노조와 전국공무원노조, 민주공무원노조의 조직통합 및 민주노총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앞두고 있기 때문. 3개 노조가 통합하면 조합원 16만 명인 국내 최대 규모의 노조가 탄생하기에 법원 직원들 사이에서는 법관 중심의 조직운영에서 홀대 받아온 자신들의 위상과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법원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다. 통합노조가 출범하면 법원노조가 통합노조나 민주노총의 방침에 따라 법원과 무관한 정치적 시위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아져 자칫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노조 간부들은 7월 초 박일환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에 취임하자 재판 개입 논란을 일으켰던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문제, 노조활동 보장 등의 현안과 관련해 면담을 요청했다. 노조 간부들은 박 처장에게서 응답이 없자 사전 약속 없이 처장실에 찾아가 5, 6시간 버틴 끝에 박 처장을 만나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당시 법원 내부에서는 “대법원이 노조가 떼를 쓴다고 원칙을 버리면 불법파업, 불법시위로 기소된 이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법원이 최근 국가공무원법을 어기고 불법적인 대외활동을 한 직원들의 징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광주고법은 동아일보 등 메이저 신문의 광고주를 상대로 압박운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법원 직원 김모 씨(42)에 대한 징계절차를 최근 중단했다.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사실관계가 확정된 뒤 다시 징계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광주고법의 이 같은 결정은 광주지법이 6월 김 씨에게 “(인터넷에) 법원 공무원 신분을 밝힌 글을 통해 광고 중단 압박운동을 독려했다”며 중징계 의견을 낸 것과도 배치된다. 게다가 김 씨가 법정에서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등 법정소란을 주도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법원은 권력의 시녀”라며 재판부를 공개 비난했던 점을 감안하면, 여러 징계사유 중 일부만을 다투고 있는 재판을 이유로 징계 논의를 중단한 것은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법원노조 간부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등 국가공무원법이 금지한 정치활동을 벌인 데 대해서도 법원은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본 뒤 가담자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사법부가 실정법을 위반한 직원의 명단조차 파악하지 않고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법의 수호자임을 포기하는 태도다.

전성철 사회부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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