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훈]정운천의 꿈, ‘박비향’ 브랜드

  • 입력 2009년 9월 9일 02시 59분


코멘트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지난해 8월 6일 장관직을 그만둔 직후 국토순례를 떠났다.

“촛불정국의 원망 내려놓겠다”

처음 간 곳은 천일염으로 유명한 전남 신안군 신의도였다. 이곳을 첫 순례지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2월 18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국무위원 내정자 워크숍이 열렸다. 발언 순서가 되자 그는 대통령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소금이 식품입니까, 광물입니까.” 그는 소금이 광물로 분류되는 바람에 프랑스 게랑드 소금은 kg당 6만∼9만 원인데 질 좋은 남해안 우리 소금은 1000∼2000원밖에 못 받는 현실을 통탄했다. 그의 노력으로 한 달여 만에 천덕꾸러기 천일염은 식품으로 거듭났다.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바뀐 신의도 천일염은 이제 두바이의 칠성급 호텔에도 납품된다.

100일간 순례를 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엔 온갖 상념이 주마등처럼 스쳤다고 했다. 5개월 남짓한 장관 재임 중에 일어난 광우병 사태의 한복판에 그는 서 있었다. 동네북처럼 당했고 험한 욕도 한없이 들었다. 시위가 절정이던 6월 10일 많은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진실을 알리겠다며 광화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물병을 던지고 “매국노”라고 야유하는 시위대의 위력에 속절없이 떠밀렸다. 20년 친구와 의절하다시피 한 부인이 주위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교사직을 그만두려고 한 일, 책상에 앉은 채 엎드려 자고 있는 어린 딸의 얼굴에 선명하게 남아 있던 눈물자국을 보고 마음 아파한 일….

순례가 끝날 무렵 그는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에 들렀다. 거기서 퇴계 선생의 종손과 토종매화를 화제로 얘기하던 중 박비향(撲鼻香·코를 찌르는 향기)을 만났다. ‘뼈를 깎는 추위를 만나지 않았던들(不是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매화가 지극한 향기를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 당나라 고승 황벽선사의 시를 듣는 순간 울컥 뭔가 가슴에 치밀었다.

해남에 터를 잡고 5년 5개월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자며 키위에 매달린 일, 1987년 태풍 셀마로 모든 것을 잃고 좌절했던 일, 89년 키위시장 개방의 날벼락까지 닥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참다래유통사업단을 만들어 낸 일….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는 다짐했다. 비록 장관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농업을 살리는 본업은 계속할 생각이다. 그러니 ‘실직(失職)’은 했지만 ‘실업(失業)’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고는 다시 힘을 내 최근까지 발품을 팔며 농업개혁을 촉구하는 전국 순회강연을 시군 60여 곳에서 계속했다.

5대 발효식품 세계화에 도전

그는 4일 ‘박비향’(올림출판사) 출판기념회에서 “촛불정국 때의 아픔과 원망, 분노를 다 내려놓겠다”고 했다. 과거의 갈등을 잊고 화합과 소통을 위해 희망의 향기를 나누고 뿜어내는 박비향이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광우병 사태를 촉발한 MBC PD수첩 제작진에는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낼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앞으로 그는 박비향 브랜드를 단 친환경 농산물을 개발하고 민족의 얼과 문화가 담긴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젓갈 등 5대 발효식품의 세계화에도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키위 신화’를 창출해낸 그는 참다래 아저씨로 통한다.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서에는 키위를 참다래로 이름 짓고 재배농가들을 모아 수출에까지 성공한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잠시 ‘외도’를 끝내고 ‘본업’으로 돌아온 정 전 장관. 그가 앞으로 친환경 농산물과 발효식품에 붙일 박비향 브랜드의 성공과 농식품 분야의 또 다른 블루오션 창출을 기대한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