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신종 플루와 함께 살기

  • 입력 2009년 9월 4일 1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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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플루의 정식명칭은 인플루엔자A(H1N1)이다. 일본은 신형인플루라고 쓰지만 앞에 ‘돼지’를 붙일 때도 있다. 중국에선 H1N1 갑형유감(甲型流感)이라고 표기한다. ‘갑’은 영어 ‘A’에 해당한다. 세계에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기에 돼지를 붙이지 않는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서방언론은 지금도 거리낌 없이 ‘돼지인플루엔자(SI·Swine Influenza)’라는 용어를 쓴다.

바이러스와 싸움에 完勝은 없다

우리가 신종 플루라고 쓰게 된 것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용어로 H1N1을 쓰는 데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돼지인플루엔자란 용어 때문에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명칭을 고치고 나서 돼지고기 기피현상은 사라졌다. 셰익스피어는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움은 변함없다’고 묘사했지만 실제론 이름이 갖는 낙인효과가 대단한 것 같다. 장미꽃과 달리 신종 플루에 대해선 잘 모르기 때문에 이름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광우병 촛불시위 때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데 큰 시사점을 던졌던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과학기술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불확실성은 위험을 더욱 증대시킨다고 말했다.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로 미생물과 함께 살아왔는데 신종 플루의 출현에 새삼스럽게 떠는 것은 과학이 전염병을 물리쳤다는 신화에 빠져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항생제가 발명되면서 전염병은 퇴치되는 것처럼 보였다. 1967년 미국의 저명한 의사 윌리엄 스튜어트는 “감염성 질환의 문을 닫을 때다”고 말했다. 당시의 낙관적 분위기에서 그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미생물과의 오랜 전쟁에서 인간은 승리를 거둔 듯했다.

요즘 인간은 바이러스란 존재를 너무 가볍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 같다. 시카고대 질병생태학자 윌리엄 맥닐은 ‘재앙보존의 법칙’이란 무시무시한 이론을 제시한다. ‘바이러스의 숙주집단이 증가하면 복제, 돌연변이, 재조합, 선택의 기회가 증가하므로 바이러스 개체군의 진화적 변이 가능성이 커진다. 인구가 증가하면 새로운 바이러스성 질병이 갑자기 발생할 확률도 필연적으로 높아진다. 바이러스는 숙주인 인간과 숨바꼭질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변이시킨다.

신종 플루는 1918년 4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에 비견할 만하다. 스페인독감은 SI가 아니라 조류독감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유행 패턴은 닮아 있다. 신종 플루는 전염력은 높지만 치사율은 스페인독감에 비해 훨씬 낮다. 과거와 달리 우리에겐 항바이러스제가 있고 앞으로 백신도 나온다. 그러나 불리한 점도 있다. 항공편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한 번 질환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

전염병 관리도 국가 경쟁력

우리나라도 환자가 5000명을 돌파했다. 어차피 완벽하게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면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국가차원에서는 백신과 항바이러스제의 확보, 공중보건 강화, 전염병정보 축적이 필요하고 개인차원에서는 위생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신종 플루 대처에서 보건소가 나름대로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백신과 항바이러스제는 물량 확보와 시기 면에서 대응이 늦었다는 논란이 있다. 늘 그렇듯 예산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공중보건이란 이윤이 아니라 국민건강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 ‘인플루엔자의 황제’로 불리는 미국 에드윈 킬버른 박사는 ‘백신 없는 전염병보단 전염병 없는 백신이 낫다’고 말했다. 백신을 쓰지 못하고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는 만일의 사태에 언제나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종 플루를 잘 이겨내는 것도 국가의 경쟁력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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