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사승]공영방송 이사회, 먼저 독립원칙 세워야

  • 입력 2009년 9월 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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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문화진흥회와 KBS의 새 이사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화를 원하는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잔뜩 긴장한다. 그간 양 방송사 이사회는 경영진과 한 몸처럼 지냈다. 서로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사회가 공영방송 경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해줄 만한 구석은 거의 없었다. 경영진이 던져주는 결과보고에 도장 찍는 일 말고 이사회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이사회란 경영진을 감시 감독하는 조직이다.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 첫째, 경영진에 대해 독립적인 입장이어야 한다. 경영진은 소유권자를 대신해서 기업을 경영하지만 결코 자기이익 챙기기를 소홀히 할 존재가 아니다. 이런 피감독 대상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고는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둘째, 경영진에 대한 강력한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 경영 결과에 대해 책임 문책과 보상 제공 모두를 통제해야 한다. 대신 엄격하고 공정한 감사가 필수적이며 적절한 보상제도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경영진과 함께 문제를 포착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이 기능을 충실히 해낼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경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영진을 감시 감독해야 하므로 합당한 장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사들 자신의 직무수행을 평가할 수 있는 효율적인 메커니즘도 만들어야 한다.

경영진 선택 기준은 이해조정력

이론적인 논의이므로 조직에 따라 적용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야겠지만 어떤 이사회든 제대로 작동하자면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원칙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자본주의 원칙대로라면 소유권자인 주주가 가장 중요한 봉사대상이다. 기업은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이윤은 소유권자인 주주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요즘 주주만 섬긴다고 말하는 기업은 없다. 미디어기업,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누구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가.

다양한 성격의 이해당사자(stakeholder)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필요하다. 미디어기업은 기업 활동에 본질적으로 연결이 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이해당사자가 많다. 주주는 물론 종사자 소비자 공급자 공동체 사회가 이에 해당한다. 저널리즘의 경우 기자 광고주 투자자 수용자 사회가 이해당사자다. 이사회는 경영진이 이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제도나 정책을 구성해야 한다. 경영의 범위는 여기에 맞추어 설정된다. 경영진은 이 틀 안에서 이해당사자가 원하는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주주가 챙겨가는 이윤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를 위한 가치창출의 결과물이지 이에 앞서지는 않는다.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이해관계나 가치를 따로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각기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다양한 가치를 조화롭게 구성해내는 일이 현실적으로 더 바람직하다. 이사회가 뽑는 경영진은 이를 수행해내는 전문가여야 한다. 경영진은 이해당사자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조화를 구축해야 한다. 이사회가 경영진을 고르는 기준도 여기에 두어야 한다. 경영진이 조직 내 인사를 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미디어기업 이사회의 책무는 여기에 하나 더 더해진다. 사람들은 미디어기업이 이사회의 감시뿐만 아니라 공적 감시도 받기를 원한다. 공중의 신뢰를 유지하고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가를 점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경영성과와 함께 사회적 책무를 균등하게 저울질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널리즘 황금기였던 1970년대에는 기자, 상업화가 강화됐던 1980, 90년대에는 투자자 및 광고주에게 쏠렸던 이해당사자의 균형추가 디지털시대에는 수용자 쪽으로 대폭 이동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된다.

실질적 공적 감시 기준 만들어야

얼핏 시청자위원회가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처럼 보인다. 공적 감시의 제도를 가진다는 의미는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공적 감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측정 가능한 공적 가치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BBC가 공적 가치를 계산해낼 공식을 제시했듯이 말이다. 인도계 코미디언이 출연하는 ‘구드니스 그레이셔스 미(Goodness Gracious Me)’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가치는 다른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기 위한 대형 문화제를 개최하는 데 들어가는 얼마의 비용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다는 식의 계산이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

공영방송의 이사회는 정부와 현업 사이의 완충지대이다. 정부의 간섭을 막아내야 하지만 동시에 간섭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현업에 대한 감시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방송 없이 정치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정치권력을 녹록하게 봐서는 안 된다. 공영방송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수렴하도록 이사회가 해야 할 일과 원칙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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