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동아논평]큰 빛 남기고 떠난 김수환 추기경

  • 입력 2009년 2월 17일 21시 10분


동아논평입니다.

제목은 '큰 빛 남기고 떠난 김수환 추기경'. 권순택 논설위원입니다.

-----------------------------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큰 어른이요,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어제 87세를 일기로 선종했습니다. 그는 가톨릭을 넘어 종교계 전체의 지도자였고 한국 사회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 추기경을 잃은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애도한 것은 전혀 과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 추기경은 1969년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된 후 40년 동안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외면하지 않았고 역사의 고비마다 바른 말과 행동으로 나라와 위정자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했습니다.

독재정권 시대에는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과 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사회의 등불이 됐습니다.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군 추모 강론을 통해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권력의 야만성을 비판했지요. 6월 민주항쟁 당시 시위대가 명동성당으로 피신해 들어가자 "나와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며 경찰의 성당 진입을 온몸으로 막아 민주항쟁의 성공에 기여했습니다.

그는 민주화 이후에도 오만한 권력에 대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에는 "나라의 전체적 흐름이 반미 친북 쪽으로 가는 것이 걱정스럽다"는 말로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 애썼습니다.

북한 청소년에게 과학책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폭정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였지만 북의 핵무기 개발과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매섭게 비판하는 균형감을 지닌 지도자였습니다.

김 추기경은 일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고통을 함께 하며 하나님의 뜻을 몸소 실천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두 사람에게 자신의 안구 각막을 기증함으로써 사랑과 모범을 실천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이자 통합의 상징이었던 지도자를 잃었습니다. 갈수록 대결과 분열이 극심해지고 있어 김 추기경 같은 큰 어른이 더욱 절실할 때입니다. 김 추기경이 떠난 빈 자리가 오랫동안 더욱 크게 보일 듯합니다. 지금까지 동아논평이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