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아보니/장연옥]中전시실에 유배 당한 고려술잔

  • 입력 2006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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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근처에 갔다가 확인해 보고 싶은 전시물이 있어서 중국전시실에 들렀다. 내가 찾아가 확인하려던 전시물은 고려시대 때 만든 술잔인데 당시 고려 학자들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선물로 주었던 역사적인 유품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술잔 설명서에 ‘고려시대의 사신들이 중국 송나라에 선물로 증정한 와인 잔’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지금은 설명서가 보이지 않는다.

고려시대 술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중국전시실에 전시된 술잔을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외교적 입지를 논하고 싶어서이다. 중국에 선물로 줬지만 고려의 문화, 고려인의 예술정신이 담겼으므로 중국전시실에 있는 술잔을 한국전시실에 옮기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방안을 런던의 한국대사관에 제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년 전부터 세계 많은 국가가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된 자국의 예술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상당수가 전쟁을 통해서 서방 국가가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에서 노획했거나 불법경로를 통해 입수한 미술품과 문화재이다.

올해 초에는 멕시코가 오스트리아 빈의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아스테카 유품을 돌려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게티 박물관은 5세기에 만든 그리스의 컵을 이탈리아에 돌려줬다. 한국은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는 데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영박물관 중국전시실은 몇 년 전에 생긴 한국전시실에 비해 역사가 길고 면적이 더 넓으며, 전시물이 훨씬 더 많다. 만약 고려시대 술잔을 중국전시실에 전시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한국전시실에 전시하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한 논란이 생기면 대영박물관은 중국의 입장에 더 신경을 쓸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한국보다 큰 나라이며 국제 사회에서의 정치 경제 외교적 영향력이 한국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국제문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의 외교 입지가 얼마나 단단한지 아니면 얼마나 부족한지 나름대로 알고 있다. 외국에서 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빼앗긴 문화재도 아니고 선물로 준 문화유품 한 점을 가지고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지나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문화유산을 찾으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우리 스스로가 중심을 세우려고 할 때 다른 국가가 대한민국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한국인을 존중하지 않을까.

중요한데도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문제가 적지 않다. 문화재 환수 노력이 대표적이다. 경제만 중요하고 문화는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경제대국이 된다고 해서 외국에서 한국을 존중하거나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저절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한국이 아닌 중국전시실의 고려 술잔을 보며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대한민국이 하루라도 빨리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는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삼 들었다.

장연옥 재영한국예술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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