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남의 사생활 존중해주세요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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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의 영웅으로 불리는 하인스 워드가 곧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을 찾는다. 그러면서 그는 “사생활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어떤 이슈나 사건이 있을 때마다 냄비처럼 달아오르다가도 금세 식어 버리는 속성이 있다. 워드는 그것을 알고 미리 경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그가 대견하다. 인종 차별 속에서 어떻게 저처럼 활달하면서도 속 깊은 젊은이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신통하다. 그 뒤에 ‘코리안 맘’으로 불리는 엄마 김영희 씨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캐나다 사람으로 한국에서 4년째 살며 사회복지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나는 한국인을 매우 좋아한다. 1년 전에 생활력이 강한 한국 여인을 아내로 맞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 살면서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한국인들은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은 했느냐’, ‘나이가 몇 살이냐’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 여성과의 결혼 생활은 어떠냐’며 은근히 노골적인 질문까지 던지는 것은 정말이지 질색이다. 아주 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례가 되는 질문은 하지 않는 게 내가 생각하는 예의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을까. 워드 관련 보도에서도 그 어머니의 ‘출신’에 초점이 맞춰진 것을 보고 놀랐다. 워드의 어머니는 “서운한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한다. 출신이 어떻단 말인가. 워드는 말한다. “엄마가 방황했던 곳도, 내가 태어난 병원에도 가 보고 싶다”고. 말 그대로 ‘엄마와 사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까. 이제까지의 사례를 보면 잘 지켜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 언론이 워드의 ‘성공담’을 보도하면서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차별 문제, 미국 내 소수 인종 차별의 현주소, 혼혈아 교육 문제, 법률적인 각종 차별 등을 기획기사로 다루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몇몇 신문에선 가수 인순이나 혼혈 체육선수들의 휴먼 스토리를 부각하기도 했다. 특히 연초에 동아일보가 기획시리즈로 다룬 ‘혼혈인, 그들도 한국인입니다’에서는 한국에서 혼혈인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보여 줬다.

연예인들은 통상 공인(公人)을 자임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사생활은 낱낱이 파헤쳐지기 일쑤다. 어떤 경우는 그 대상자가 안쓰럽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공인이라 해도 지켜져야 하는 사생활이 있다. 일부 황색 언론은 왜 그들을 송두리째 발가벗기지 못해 안달일까.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알고 있다. 사생활을 다루는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에 혹시 그런 심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워드가 난생처음 찾는 엄마의 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다녀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의 과잉 보도가 자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에 관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조금 덜 안다고 해서 우리 삶에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테렌스 핸더슨 성균관대 국제교류교육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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