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념 시론/이민웅]깊이와 넓이, 신문만이 가능하다

  • 입력 2005년 3월 31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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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1년쯤 된 것 같다. 나는 그 무렵부터 TV 뉴스를 볼 때면 대체로 소리를 죽이고 영상만 보는 편이다. 뭔가 내용이 부족한 느낌인 데다가 정보에 오도당하는 것을 피하면서 영상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그나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관련 정보와 의견은 신문에서 얻는다.

TV 뉴스는 신문에 비해 현장성, 속보성 같은 강점도 있지만 약점도 많다. 먼저 TV 뉴스는 ‘보여 준다’. 그래서 이른바 ‘그림’이 신통치 않은 기사는 작게 취급하거나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신문은 그렇지 않다. 다음으로 TV 뉴스의 정보량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충분하다. 45분짜리 저녁 9시 주력 뉴스의 정보량은 신문지 2쪽 분량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에 신문은 심층 보도와 통찰력 있는 논평에 강점이 있다.

▼TV9시뉴스는 신문지2쪽▼

예컨대 TV 뉴스가 가장 자세하게 보도한다는 ‘기자 현장 리포트’의 기사 길이는 방송사에 상관없이 1분 20초로 정형화돼 있다. 그것도 10초는 앵커의 소개 멘트가 차지하고 실제 뉴스 내용은 1분 10초에 지나지 않는다. 200자 원고지로 2장 정도에 불과한 분량이다. TV 뉴스가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우 집권 세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방송 제도의 미비점 때문에 TV 뉴스는 권력의 핵심, 즉 대통령의 국정 수행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는 비판은 고사하고 문제 제기도 제대로 못한다. 그러니 TV 뉴스만 보는 사람들은 나라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고, 혹시 잘못된 일이라도 벌어지면 그것은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 아랫사람들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오도당하게 된다.

요즘 감성적인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인터넷 전용 ‘온라인 신문’의 뉴스를 한번 살펴보자. ‘너무도 사소하고도 출처가 불분명한, 너무도 야한, 너무도 신뢰할 수 없는 정보들이 사이버 공간에 범람함으로써 인터넷과 온라인 저널리즘에 대한 흥미와 신뢰를 함께 떨어뜨리고 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수가 그런 쪽인 듯하다.

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저널리즘의 역할과 규범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예컨대 언론은 일반 수용자들이 인터넷상에서 얻는 신뢰하기 힘든 원자재 정보와 설익은 견해보다는, 그리고 TV 뉴스의 부실하고 편향된 정보보다는 언론작업을 통해 확인과 검증을 거쳐 더 정확하고 정리된 정보를 제공하고 또 그러한 정보에 대한 권위 있는 논평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은 신문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신문은 TV를 포함한 다른 매체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고, 다른 매체가 하는 것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매체상의 강점이 있다. 특히 심층 보도, 정제된 논평, 비판적 공론장의 제공 등에서 그렇다.

시야를 조금 넓혀 보자. 우리가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는 공공 문제에 대한 관심과 ‘시민적 덕성’을 갖춘 식견 있는 시민이 없이는 유지되기 힘들다. 어떤 이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제는 공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도 위험 요소가 많다고 본다.

▼심층보도-논평이 신문의 힘▼

중대한 위험 요소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억지와 과잉 정치참여가 아닌가 한다. 바로 이런 문제에 관해서도 다양한 정보와 논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신문을 구독하지 않을 수 없다.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체로 평균 이상의 지적, 이성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민웅 한양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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