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올해로 60주년 을유문화사 정진숙 회장

  • 입력 2004년 12월 31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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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60주년 을유문화사 정진숙 회장. 그는 “우리가 광복을 맞이하던 때 얼마나 가난했어요. 지금 굉장히 발달했어요. 얼마나 대단합니까. 다시 뛰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올해로 60주년 을유문화사 정진숙 회장. 그는 “우리가 광복을 맞이하던 때 얼마나 가난했어요. 지금 굉장히 발달했어요. 얼마나 대단합니까. 다시 뛰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홰치는 씩씩한 새벽 닭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닭의 해, 을유(乙酉)년이 돌아왔다. 1945년 광복되던 해 역시 을유년이었다. 이해 12월 1일 세워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출판사로 성장해 온 ‘을유문화사’는 이해를 기리기 위해 이름부터 ‘을유’를 내세웠다. 이 출판사의 창업자인 은석 정진숙(隱石 鄭鎭肅·93) 회장은 ‘문화입국(文化立國)’의 기치를 걸고 ‘신생(新生) 대한민국’의 정신적 터전을 닦기 위해 온 힘을 쏟아 온 인물이다. 국학서와 폭 넓은 인문 문학 서적들을 출판해 온 그는 현재 출판인들로부터 ‘원로 중의 원로’로 존경받고 있다. 마침 출판계에서는 박맹호 민음사 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을유문화사 창립 화갑 기념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져 정 회장과 을유문화사의 노고를 기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 정인보 선생이 “건국 사업” 격려

정초를 앞두고 을유문화사가 자리한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옥으로 찾아가자 2층 회장실에는 오전 9시 무렵 출근한 정 회장이 전기난로를 옆에 두고 새로 나온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아흔을 넘긴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고 목소리도 또렷했다. 그에게 을유년을 다시 맞는 감회부터 물었다.

“참 가슴 벅찬 해이지요. 사람들이 기뻐서 지르던 함성이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아요. 저는 그해에 서른네 살이었는데, 광복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 다니던 동일은행(조흥은행의 전신)에 사직서를 냈어요(그는 동일은행에 다니던 중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군에 연행돼 수형생활을 했고 광복되면서 풀려났다). 일제도 끝났는데 무슨 일을 해도 굶어 죽겠나, 뜻있는 일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요즘 고달픈 시절이라고 고개 숙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다시 을유년을 맞고 보니, 올해는 광복 찾은 그때 그 힘으로, 새 나라를 세운다고 생각하고 모두들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습니까?

“당시 삼십대 혈기 넘치던 네 사람이 뜻을 맞췄습니다. 당시 고려문화사에서 편집하던 조풍연(趙풍衍), 아동문학가이던 윤석중(尹石重), 동일은행에서 일하던 민병도(閔丙燾·전 한국은행 총재), 그리고 저였지요. 저는 그때만 해도 출판업이라는 게 영세해 보여 선뜻 응하지 못했는데 집안 어른이던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국학자로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냄) 선생을 만나 상의 드렸더니 ‘일제에 뺏겼던 우리 문화 역사를 소생시키는 건국 사업으로 알고 해보라’고 등을 두드려주셨습니다. ‘문화입국’이라는 희망이 가슴 속에 차올랐습니다. 그래서 처음 낸 책이 한글 익히는 ‘가정 글씨 체첩’이었습니다. 편집에 일가견 있는 두 문인, 경영에 노하우를 지닌 금융인 두 사람이 힘을 합치니, 우리 출판사는 금세 크게 일어섰지요.”

광복 후 60년 동안 우리는 힘든 격변기를 살아 왔다. 정 회장은 “물론 저희도 마찬가지였지요. 지금 와서 보면 어떻게 견뎠는지 모를 만큼 모진 세월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950년 전란이 일어났을 때를 들었다. “인민군이 당시 종로에 있던 저희 사옥에 민청 중앙위원회 깃발을 내걸었어요. 책들을 바리케이드로 쌓아놓았다가 나중에는 현금, 장부와 함께 모두 불 질러버리고 떠났지요. 피란 갔던 부산에서는 창립 동인이던 나머지 세 분이 차례차례 출판사를 떠나셨어요. 나중에 서울로 와 보니 남은 건 빚하고 간판뿐이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한번 끝까지 해보자’는 결심이 솟구쳤어요.”

○ ‘큰사전’ ‘한국사’ 가장 보람 느낀 책

그 결심은 당시 잿더미 위에 던져진 우리 민초들의 가슴에 남아 있던 삶의 의지, 어디에 씨를 뿌리든 기어코 움을 틔우고 열매 맺고야 마는 강인한 생명력 같은 것이었으리라. 결국 그는 오늘날 7000권을 헤아리는 양서들을 펴낸 걸출한 출판계의 대부(代父)로 칭송받고 있다. 그에게 지금까지 펴낸 책 가운데 가장 보람을 느낀 책들을 꼽아달라고 하자 “가장 고생스럽게 만든 책”이라며 ‘큰사전’과 ‘한국사’를 들었다.

“1947년에 이극로 김병제 두 분이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에서 어렵게 만든 사전 원고 보따리라며 들고 왔어요. 당시만 해도 신문조차 종이가 없어 마분지 비슷한 종이에다 인쇄하던 시절이라, 모조지를 쓰는 사전은 펴낼 엄두가 안 났습니다. ‘힘들겠다’고 접었는데 나중에 이극로 한글학회 이사장이 원고 보따리를 내던지며 ‘이걸 가지고 일본 놈들한테 가서 내달라고 할까요’라고 외치더군요. 저는 시중에 모조지란 모조지는 모두 모아다가 우선 1권을 펴냈어요. 감격스럽더군요. 그런 뒤 수소문을 거듭해 결국 문교부 편수국 고문으로 와 있던 앤더슨이란 미국인한테 부탁했지요. 하버드대 언어학 박사였던 그분은 우리 한글 체계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미국 록펠러재단에 연결해줬어요. 록펠러재단은 우리한테 4만5000달러어치의 종이를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이마저 전란 중에 인민군이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이 찍힌 전단(삐라)으로 만들어버렸지요. 결국 전후에 록펠러재단에 어렵사리 다시 부탁했는데 들어주더군요. 결국 1967년에 ‘큰사전’ 6권을 완간했습니다.”

○ 새해 300권 목표 세계문학전집 시작

그는 “최근 미국의 힘이 세계적으로 너무 커져서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아예 미국이라면 반대부터 하는 사람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우리 땅에 전쟁이 나자 미국이 젊은이들을 보내주고, 재건에 크게 힘을 보탠 점을 잊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을유문화사가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통사인 ‘한국사’ 역시 제작 과정에서 필자들이 숨지거나 5·16군사정변 이후 수감되는 등 산고를 거쳤다. 그러나 분량은 오히려 애초의 5권에서 7권으로 늘어나 1954년 기획한 지 11년 만인 1965년에야 완간했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하며, 완독은 아니어도 새 책의 표지와 구성, 서문을 꼬박꼬박 읽는다. 그에게 새해 펴낼 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물었다.

“새해 첫 책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본기입니다. 요즘 인문학이 어렵다고 하는데 인문학은 지식의 출발점 같은 겁니다. 새해에는 2001년 시작한 인문 고전 시리즈를 확장해서 서양 고전도 펴낼 겁니다. ‘황금의 가지’ ‘유토피아’ 같은 책이 나올 겁니다. 새해부턴 앞으로 20년 동안 300권을 목표로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시작할 겁니다(을유문화사는 이미 1975년 국내 처음으로 세계문학전집을 완간한 바 있다).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도 100권을 목표로 계속 펴낼 겁니다.”

그는 “이 일들은 새해에 기획실장에서 상무로 승진한 손자 정상준 씨(37)가 추진할 것”이라며 “한 번 더 을유년을 맞았으니 새로 피가 돌고, 다시 크게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을유문화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최근의 고달픈 모습을 떨어버리고 광복 때처럼 다시 활력을 쏟아 일어서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새로 달리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가슴에 새긴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오래된 것을 존중하면서 새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이지요. 그걸 실천할 수 있는 건 우선 책 읽기입니다. 저는 ‘책이 없는 백만장자가 되느니보다 책과 함께 살 수 있는 거지가 낫다’는 마코레(역사가)의 금언을 잊은 적이 없어요. 개인이든, 사회든 책 읽는 습성, 독서하는 문화를 기반으로 할 때에만 비약할 수 있겠지요.”

▼정진숙 회장은▼

△1912년 11월 5일 경기 화성시 팔탄면 출생

△1935년 10월 보성전문학교 2년 중퇴

△1945년 12월 을유문화사 창립, 전무

△1952년 10월 을유문화사 사장

△1956년 8월 한국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 사장

△1962년 12월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1970년 10월 독서신문사 회장

△1970년 12월 국민훈장 동백장 수장

△1972년 2월 한국출판금고 이사장

△1987년 7월 출판저널 발행인

△1996년 8월 중앙박물관협회 회장

△2000년 6월 을유문화사 회장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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