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칼럼]평화 배당금을 아시나요

  • 입력 2003년 10월 1일 18시 01분


어제 5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국민 앞에 나선 우리 군은 당당했다. 비가 오는데도 가슴을 쫙 펴고 서울 한복판을 누비는 장병들을 보면서, 하나같이 일격필살의 능력을 갖췄다는 각종 무기의 행진을 보면서 듬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군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막강한 군대로 도약하겠다고 한다. 얼마 전 국회에 제출된 내년 국방예산은 올해보다 8.1% 늘었다. 최근 5년래 가장 큰 증가율이다. 전력증강사업 예산은 6조3000억원으로 9.8% 늘어난다.

전쟁 억지력을 따져야 하는 국방의 관점에서 보면 군은 부단히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국방이 나라의 전부는 아니다. 정부의 내년 살림계획을 보면 중요한 항목이 얼마나 많은가. 10조원이 넘는 예산만 골라도 교육 국방 사회간접자본투자 사회복지 농어촌지원이 줄을 잇는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쥐어짜고 또 쥐어짠다 해도 국가가 쓸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다. 결국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지가 관건이다.

▼대포를 녹여 쟁기로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냉전이 종식되면서 ‘평화 배당금(peace dividend)’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해 유행을 탔다. 전쟁 위협이 크게 줄어 다른 곳으로의 전용이 가능해진 국방비를 두둑한 이익 배당금처럼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주요국들이 다투어 국방예산을 삭감하고 병력을 줄였다. 국방 목적에서 풀려난 예산과 인원은 경제발전과 복지 등에 투입됐다. ‘대포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아름다운 변화였다.

햇볕정책의 목표는 남북간 긴장 완화라고 한다. ‘한국판 냉전종식정책’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정책이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한두 해가 아니고 6년이나 됐으니 당연히 중간결산을 해야 한다. 햇볕정책이 옳다면 당장 대포를 녹여 쟁기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는 정도의 변화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햇볕정책이 성과를 내고 있다면 군은 국방비를 늘려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충분하니 군비증강 그만하자고 해야 옳다. 그런 희소식은 고사하고 북의 핵과 미사일이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했으니 평화 배당금은 꿈같은 얘기다.

햇볕정책 신자들은 남북이 자꾸 만나다 보면 긴장이 해소되고 통일의 날이 다가온다고 한다. 만나서 설전을 벌이더라도 대화는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날이 쌓이는 부작용은 어쩔 것인가. 눈 덩이처럼 불어나는 이른바 ‘평화 비용’은 돈뿐이 아니다. 이제는 북한이 관련된 문제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국론이 분열된다. 가장 중요한 우방인 미국과의 외교 현안도 남북관계의 덫에 걸려 번번이 진통을 겪는다.

어제는 한미동맹 50주년이기도 했다. 사람으로 치면 금혼식(金婚式)이다. 50년 전 한미는 무슨 생각으로 결혼을 했을까. 1953년 10월 3일자 ‘동아일보’ 1면에 당시 한국인들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변영태 외무장관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조인한 뒤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했다.

“한국인은 자유세계에서 살기를 희구할 뿐이다. 수천 명의 미국인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쳤으며 미국 납세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수십억 달러가 동일한 목적을 위해 소비됐다. 미국이 언제나 우리의 뒤에서 지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유를 위하여 싸우려는 우리의 결심을 공고히 할 것이며 난관 극복에 도움이 되는 무한한 고무의 원천이 될 것이다.”

▼金婚式인가 禁婚式인가 ▼

수백 년 지난 역사에만 가르침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명한 국민은 50년 전 역사에서도 교훈을 배워야 한다. 뿌리를 생각하면 한미동맹의 의미는 한결 명확해진다. 한미의 결혼생활도 그만하면 무난하지 않았는가. 한미동맹 50주년은 해로를 다짐하는 본래 의미의 금혼식으로 치러야지, 갈라서자고 외치는 금혼식(禁婚式)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평화 배당금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은 군의 잘못도 아니고 자유롭게 의사를 밝히는 국민 탓도 아니다. 부작용을 초래한 대북정책이 문제다. 평화 배당금을 원하는가. 그러면 ‘평화 비용’을 줄여라.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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