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완서 "인촌상은 내 발자국 돌아보게 한 賞"

  • 입력 2000년 10월 12일 19시 43분


금년은 제가 문단에 얼굴을 내민지 만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햇수로 뿐 아니라 날짜로도 오늘쯤이 만 30년이 되는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동아일보사가 만드는 여성동아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소설가가 됐습니다. 그때는 지금하고는 달라 매년 여성동아 11월호에 당선작이 부록이 되어 나왔습니다. 책이 나오는 날 박두해서 시상식을 가졌으니 아마 10월 이맘때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상쾌한 가을날이었고 동아일보사 3층이던가 4층에 있는 사장실에서 돌아가신 김상만사장으로부터 옛날 졸업장같이 생긴 상장과 상금을 받았습니다. 조촐한 시상식이었고 협소한 사장실이었지만 저는 동아일보사가 그렇게 크고 우러러보일수가 없었습니다.

현재도 광화문에 그대로 보존돼 있는, 신축한 동아미디어센터 때문에 더욱 작아보이는 구사옥이 그렇게 거대해보였던 것은 아무리 집과 시장밖에 모르는 여염의 아낙이었다고 해도 건물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무데도 빛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시대였습니다. 그 암흑한 시대를 밝히는 옹골찬 언론이 그렇게 우러러보였던 겁니다.

문학을 하려면 문예지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지 왜 하필 여성지냐고 안타까워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아일보에서 내는 잡지니까, 하고 조금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 저는 제 의식 속의 동아일보라는 후광을 떨치고도 능히 한 작가로서 홀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후에도 시대의 어둠과 혼미는 걷히지 않았고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에 대한 제 생각도 무조건적인 신뢰와 일편단심을 벗어나 변심의 변심을 거듭, 삐딱해졌고 시들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수상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상을 받을 때처럼 덤덤히 조금은 부담스러워하면서 인촌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수상 소식이 나가고 오늘까지 너무 여러 어른들이 축하와 격려를 받다보니 이게 딴 상과는 다르구나, 하고 번쩍 정신이 들게 되었습니다. 나를 작가로 낳아준 동아일보가 쭉 저를 지켜보다 “이 작가를 눈여겨 보라” 강한 조명을 비춘 것처럼 어리둥절하고 눈부신 며칠 동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저를 띄우려는 조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어쩔 수 없이 저는 제가 남긴 발자국을 돌아보게 됩니다. 너무 천방지축 살아온 게 아닌가, 저는 아직 풍화되지 않은 제 발자국을 돌아보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건 상인 동시에 벌이라 해도 두 가지를 다 겸허히 받아드리고 먼저 수상하신 빛나는 분들한테 누가 되지 않도록 제 남은 생애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박완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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