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회장 건강이상 침울한 현대…측근들 "급속 악화" 시인

  • 입력 2000년 8월 3일 19시 05분


정주영(鄭周永·85) 전 현대명예회장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

아직 위독하거나 정신을 잃은 상태는 아니지만 한 달 가량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하고 영양제 주사에만 의존하고 있다. 기력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급기야는 3일 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31일 입원했다가 퇴원한 후 불과 3일 만에 또다시 입원한 것을 보면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전 명예회장의 측근들도 비공식적으로는 ‘왕회장’의 건강에 “다소 이상이 있다”고 시인한다. 7월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단순한 진단차원”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한 현대 관계자는 “지금 당장 ‘흉사’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병원측은 “특별한 병은 없으며 내부 장기에도 별 이상이 없지만 식욕장애는 우려할 만하다”고 밝혔다.

현대측도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전명예회장의 건강문제는 비단 현대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타계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건강이 악화되면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주주로서의 권한도 행사하기 어렵게 된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왕회장 이후’의 후계구도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못했다는 점. 현대는 건설 전자 상선 등은 정몽헌(鄭夢憲)회장, 자동차는 정몽구(鄭夢九)회장, 중공업은 정몽준(鄭夢準)고문 등으로 대체적인 가닥은 잡혀 있으나 지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사리 정리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전명예회장이 의식을 잃거나 판단이 흐려지면 형제간의 다툼이 본격적으로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세 왕자’는 물론 그동안 소외돼 왔던 다른 가족까지 가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북 사업도 문제이다. 정전명예회장은 남북 경협에 물꼬를 튼 주역. 북한의 실세들과도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다. 중요한 사업은 ‘왕회장’이 직접 챙겨왔다. 그 주역이 갑자기 퇴진을 하게 되면 사업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정전명예회장만이 아는 대북 투자사업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며 “이와 관련한 정보와 자료를 서둘러 전문경영인들에게 넘겨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왕회장’의 건강이 어떻게 될지는 당분간 재계의 큰 관심사가 될 것 같다.

<이병기·정위용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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