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아보니]닐다/여성 사회참여 아직은…

  • 입력 2000년 7월 26일 18시 36분


만 4년 전 한국에 부임한 뒤 20세기 말 한국사의 격동적인 순간들을 죽 지켜봤다. 1997년의 경제위기로 한국인들은 여러 방면에 걸친 대대적인 개혁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앞에 가로놓인 장애물을 극복하고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경제를 특징지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모방할 만한 하나의 개혁모델이 된 것을 자랑할 수 있게 됐다. 또 한국인들은 이보다 더 어려운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한국인의 인(仁)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와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은 한국에 사는 동안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들이다. 또 한국 문화의 다양한 모습들도 내 주의를 끌었다.

한국에서 여성은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고, 외국인 남성도 한국에서 지내기가 어려우며, 외국인 여성이 한국에서 일하기는 곱절로 어렵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변화를 외치는 소리가 이따금 들리지만 아직도 이 점에서는 큰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은 남성 동료들에 비해 2배가 된다.

지난 4년 동안 주로 남성의 영역에 속해 있는 한국의 공적 사적 분야의 인사들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한 여자를 대화의 상대로 대면할 때 다양한 방법으로 반발한다. 차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이는 별로 없고 차갑게 대하거나 다른 태도를 갖는 이들이 많다. 또 대부분은 외국인 여성인 우리의 존재를 무시한다. 외교와 같은 공적인 일을 하는외국인 여성은 흔치 않은 경우로 여겨진다.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의 분야에서 일을 맡고 있는 한국 여성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면 나 같은 외국인 여성도 더 이상 흔치 않은 경우로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국 여성은 예술이나 스포츠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외교분야 같은 데는 여성의 참여가 드물다. 나는 비록 심각한 경제 및사회 문제로 남성우월주의가 횡행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개발도상국 파라과이 출신이지만 여성들은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영역에서 많은 자리를 얻기 위해 싸워왔고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파라과이 여성들은 대소 기업체의 일선에서 활동하며 국가 경제활동에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또 파라과이 외무부의 특수분야에서 일하는 전체 관리 중 35% 정도가 여성으로 이들 중 일부는 조직 안에서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파라과이의 해외외교직 30개 중 4곳이 여성 대사의 지휘를 받고 있다. 미국 이탈리아 교황청 페루가 그렇다. 파라과이 여성들의 외교 분야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1989년부터다.

도전은 여성들의 몫이다. 자리는 거저 선물받는 것이 아니라 전 여성들이 뭉쳐 노력을 한 결과 얻어내야 할 것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의 것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태도를 보고 긍정적인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또 한국에서 이전과는 다른 다양한 문화가 표출되고 있는 것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은 틀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나는 가까운 장래에 한국 여성들이 아직도 참여가 저조한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며 사회에서 그들의 능력과 지성에 걸맞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들이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열망을 가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으며 오직 시간만이 그것을 말해줄 것이다.

남미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 출신인 가르세테 1등 서기관은 아순시온 가톨릭대(경영학 전공)와 스페인 마드리드 외교관학교를 마치고 1989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1996년 6월 주한 파라과이대사관 1등서기관으로 부임한 이후 5년째 한국에서 근무중이다.

<고진하기자>j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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