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씨 계간 '노나메기' 창간

  • 입력 2000년 3월 6일 19시 29분


황해도 출신의 원로 통일운동가 백기완씨(68·통일문제연구소장)는 지난 겨울 내내 호되게 앓았다. ‘고향 가는 길이 있어도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어’ 생긴 병이었다. 1999년 늦가을, 한 방송사의 방북제안으로 55년만의 고향방문 꿈에 부푼 것도 잠시. 백씨는 ‘베이징 경유’라는 조건을 듣고는 방북을 포기했다.

“살아 계신다면 102세가 되시는 우리 어머니가 네 이놈, 한평생 통일운동을 했다면서 삼팔선을 부수고 왔어야지 중국으로 삥 돌아왔단 말이냐고 종아리를 내려 치실 테니까요.”

백씨는 이 고향방문 좌절을 ‘기구한 개인사(個人史)’로 여기지 않는다. 금강산 관광 허가 등 일련의 햇볕정책 추진으로 분단 이후 통일여건이 가장 좋아진 것 같은 현 상황이 사실은 ‘통일운동의 새로운 위기’임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백씨의 이러한 진단은 최근 창간된 계간 ‘노나메기’에 자세하게 실렸다. ‘노나메기’는 99년 통일문제연구소 활동을 재개한 백씨가 ‘허무주의 만연의 시대에 새로운 가치관, 역사관을 제시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만든 문예 사상지. 제호는 ‘같이 일하고, 같이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이라는 전통 정서를 일컫는 단어다.

창간호의 기둥 노릇을 하는 읽을거리는 백씨가 오세철 연세대교수(행정학)와 ‘어떤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벌인 댓거리(대담). 금강산 관광에 대해 “비싼 잠, 비싼 밥, 비싼 술을 마셔가며 오가게 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피눈물로 얼룩진 통일의 길목에만 서린 긴장의 미학을 학살한 것”이라는 등 백씨 특유의 역동적이고 구성진 입말이 살아있다. 특히 백씨는 현 정부의 통일정책이 미국의 신자유주의적인 한반도 지배방식을 대행하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한다. 백씨의 일관된 ‘주장들’은 책의 곳곳에 스며 있다.

이밖에 장명수 우석대 총장등이 기고한 수필 모음 ‘내 가슴에 새겨진 영원한 한마디’, 백일 중앙대강사(경제학)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한국형 기업발전 모형연구’ 등의 논문과 시 공모 당선작이 실렸다. 211쪽 6000원.

그동안 모금한 600여만원으로 만든 ‘노나메기’는 전화와 우편주문으로만 판매된다. 연간구독료는 2만원. 02-762-0017, nonameky@jinbo.net.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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