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명진/미디어산업 진입 벽 낮추자

  • 입력 2000년 1월 13일 19시 11분


미국 최대의 인터넷 망을 가진 AOL사와 역시 미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디어 그룹 타임워너 사의 합병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41세의 젊은 경영자가 이끄는 10년된 인터넷 회사와 60세와 59세의 나이든 경영자들이 이끄는 70년 된 미디어 회사간의 합병은 양측 최고 경영자들의 나이가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듯이 과거와 미래의 결합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수 없다. 이 사건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통신 방송 영화 출판 등 기존 미디어 간 융합이 주류 현상으로 기정 사실화되고 있는 점이다. 유사한 형태의 합병은 물론 앞으로 올드 미디어 간, 인터넷 기업 간에도 종적 횡적인 형태의 합병 돌풍이 전 세계적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둘째, 인터넷에 걸었던 탈중심화, 참여적, 민주적 매체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과연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일고 있는 점이다. 20세기 매체의 특징인 거대한 미디어 조직들에 의한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 정보 문화 공급 방식에 의해 야기되었던 병폐들, 인간 정신의 지배 통제 조작 등의 위험성이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지 의혹과 불안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미국같이 국경을 넘는 세계적인 인터넷 망을 지니지 못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같은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 새로운 방안과 전략이 요구되고 있는 점이다. 미국의 견제 세력임을 자처하는 유럽에서도 가입자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터넷망은 AOL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3사이기 때문이다. 뉴스 방송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등 미디어 문화의 방대한 저장고와 생산력을 지니고 있는 그룹과 세계적인 인터넷 접속망이 결합됨으로써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하고 엄청난 스케일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유사한 합병이 연달아 이루어질 경우 이제까지 문화적 예외 논리롤 앞세워 간신히 미국 미디어 문화의 홍수를 막아온 유럽 국가들의 불안감과 고민은 상당한 것이다. 이것은 유럽만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합병바람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합병이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되려면 정부 민간 차원에서 대비해야 할 점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미디어 융합 현상에 대비한 법적 제도적 정비가 안되어 있는 점이다. 불과 며칠전 통과한 방송법은 이처럼 불쑥 다가온 현상을 다루기에는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기존의 미디어 산업에 가하고 있는 진입장벽과 점유율 제한 방법들은 이처럼 새로이 전개된 상황에 대처하기 힘든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장벽과 제한 자체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겨냥하는 언론독점의 폐해는 막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우리의 정보고속도로 정책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정책은 전화망을 고도화한 디지털가입회선(DSL) 방식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데 정보 통신 정책의 주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었던 케이블망의 확충과 품질및 성능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번 합병에서 나타났듯이 인터넷 서비스들이 보다 빠르고 고품질의 화질 제공을 위해 케이블망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케이블망은 10여년전 정부가 약속한 속도와 품질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세 번째는 다양하고 세련된 쌍방향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기반 사업들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올드 미디어와 인터넷의 결합은 단지 올드 미디어의 내용물을 인터넷을 통해 널리 보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합과 함께 많은 인터넷 제공의 정보나 멀티미디어 영상물들이 상호작용성 문화물로 제작되고 변형되어 갈 것이다. 이것은 일방향성의 문화물과는 다른 논리와 구성의 체계를 요구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비한 연구 개발이 절실하다.

박명진<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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