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세상읽기]「BBB」보다「ADAD학점형」

  • 입력 1996년 12월 13일 19시 36분


『우리 아이는 겨우 2백75점이야』 선배언니네 집에 놀러갔다가 들은 친구와의 통화내용이다. 『어머 언니, 나한테는 2백52점이라고 했잖아』 『얘는.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부풀려서 말하는 거야. 괜히 기죽을 거 없잖아』 지난 주 수능시험 성적이 발표되자 수험생의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아이의 점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 언니도 그동안 「온 식구 총력전」의 결과가 숫자로 뚜렷이 나타났으니 거짓말이라도 점수를 올려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심정일거다. 그러나 고득점을 얻은 학생은 머리가 좋고 끈기도 있는 고품질 인간이고 저조한 성적을 받은 학생은 그 점수만한 인간일까. 그건 절대로 아닐 것이다. 정직함이라든지 남에 대한 배려같은 성숙한 인간의 조건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나라 시험제도로는 계산되지 않는 소질이나 적성, 또는 감성지수등이 수능시험에는 하나도 고려되어 있지 않으니까. 우리의 입시제도는 시킨대로 줄줄 외운 것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얼마만큼 잘 맞추었나 하는 점수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그런 숫자 놀음에 본인은 물론 가족을 비롯한 그 주위사람들이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시키는 것을 잘 따라하는 순종형이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집에 오면 부모속을 썩이지 않는 성실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성실성이 앞으로 우리사회를 이끌어 나갈 사람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는 아주 빠른 속도로 획일화 사회에서 다양화 사회로 가고 있다. 뭐든지 조금씩은 다 잘하지만 한가지 내로라하는 것은 없는 「BBB학점형」의 시대에서 서서히 「ADAD학점형」, 즉 어떤 분야에서는 수준이하라 하더라도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에서 만은 뛰어난 사람이 주역이 되고 있는 흐름이 확연하다. 이렇게 볼때 지금 대학에 들어가는 젊은이들이 사회의 등뼈 역할을 할 20년후에는 반드시 다양화 전문화시대가 될 것이며 그런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힘을 쏟아온 창의적인 인간일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이 시키지 않아도 신이 나서 하는 일이 한가지는 있다. 바로 그일을 해야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용기가 나고 열의가 솟으며 남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법이다. 아이의 장래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수능시험 점수에 기죽거나 부풀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미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 비 야〈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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