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평범한 소년의 두 얼굴… 사건기록에 담긴 진실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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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프로젝트/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조영학 옮김/400쪽·1만3800원·열린책들

첫 장부터 범인을 공개한다. 열일곱 살의 로더릭 맥레이 말이다.

무대는 1869년 스코틀랜드 북부. 가난한 마을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일가족 세 명이 자택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것이다. 맥레이는 한동네에 사는 소작농의 아들. 그의 평소 행실에 대한 동네사람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살해 동기가 뭘까. 그는 타고난 살인마일까, 충동에 굴복한 소년일 뿐일까.

부제가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다. 주변인들의 진술, 범인이 집필한 회고록, 부검 보고서, 재판 기록으로 구성됐다. 이런 형식 덕에 독자는 19세기 스코틀랜드로 날아가 사건 기록을 뒤적이는 역사학자나 탐정의 입장에 서게 된다. 건조한 단문의 연쇄, 뜻밖에 느긋한 어조와 서사는 역설적이다. 각각의 문서를 읽어나가는 동안 결말을 알고 싶은 욕망을 되레 긴박하게 재촉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스코틀랜드 소작농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낸 디테일이 촉매제 역할을 한다.

저자는 독자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이 판의 주사위는 차갑고 잔인하다. 여러 개의 관점을 한 몸뚱이에 품은 주사위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집어든 감정의 주사위는 춤을 출 것이다. 분노의 벼랑 끝에 선 맥레이의 입장에 동정을 보내거나, 차가운 살인자의 모습에 몸서리를 치거나.

2016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이 책을 월스트리트저널은 그해 최고의 미스터리로 뽑았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블러디 프로젝트#그레임 맥레이 버넷#로더릭 맥레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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