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못가고 사장집 김장 담가” “헬스 마친 부장 마사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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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날, 쏟아진 ‘직장 갑질’
“男직원, 정강이 걷어차이기 예사”, “사장이 아빠라 여기라며 안으려 해”
참석자 “주변 흔한 일 언제까지…”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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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A 씨는 평일 회사 김장 행사에 동원됐다. 그가 담근 김치는 임원들 집에만 배달됐다. B 씨의 상사는 직원들을 추려 개인 트레이너로 썼다. 운동을 마치면 마사지를 시켰다. 종교가 없는 C 씨는 일요일에 교회 예배를 보고 십일조(헌금)를 내라고 강요받았다.

근로자의 날인 1일 오후 얼굴 없는 아우성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울렸다.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 등 241명으로 구성된 민간단체 ‘직장 갑질 119’는 이날 오후 1시 서울광장에서 직장 상사의 갑질 40여 건을 소개했다. 모두 제보를 받은 것들이다. 폭행·폭언, ‘노예’, 갈취, 협박, 여성, ‘황당 갑질’을 비롯한 10개 범주 사례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형식으로 인쇄돼 전시됐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과 비슷한 폭행·폭언이 10건으로 가장 많았다. 회사 임원이 직원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붙이고는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군홧발로 정강이를 세 차례 걷어찼다는 사례가 눈에 띄었다. 회사 대표 아들이 동료에게 “입을 찢어버리겠다. 죽여버리겠다”며 위협한 경우도 있었다.

폭행·폭언 다음은 업무가 아닌 일을 부당하게 시킨 이른바 ‘노예’ 사례로 9건이었다. 명절에 가족여행을 떠나면서 매일 자기 집 개와 닭에게 사료를 주라고 직원에게 요구한 사장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식사 자리에서 사장에게 턱받이를 해준 신입사원도 있었다.

갈취와 협박도 각각 8건, 4건이었다.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주최한 5만∼6만 원 상당의 뮤지컬 공연 티켓을 강매하거나 주휴수당을 요구한 직원에게 폐쇄회로(CC)TV를 돌려 잘못한 부분을 찾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편의점 주인도 있었다.

화장실 갈 때마다 문자메시지로 보고하도록 하거나 특정 정당 가입을 요구한 ‘기본권 침해’, 회사 대표가 “아빠라고 생각하라”며 껴안으려 했다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피해와 야한 옷을 입고 장기자랑하기 등 여성 관련 갑질도 눈에 띄었다. 직원의 건강을 위한다며 강제로 마라톤 연습에 참여시키고, 다리를 다친 직원에게까지 단합해야 한다며 등산을 강요한 ‘황당 갑질’도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 근로자의 날 행사를 찾아 서울광장에 나온 직장인 윤이나 씨(28·여)는 “이런 사례들은 주변에서 너무 흔하다. 여성 직장인이 겪는 갑질은 일상적”이라고 말했다. 식품회사 영업직인 고한석 씨(38)는 “술자리 등에서 상사의 욕설에 자주 시달린다. 조현민이나 이윤택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고 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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